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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가면 잊지 않고 챙겨보는 것이 있다. 영화가 막을 내리면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 영화 속 비하인드가 담긴 쿠키 영상을 찾는 재미도 있지만, 누가 만들었기에 이토록 인상 깊은지 자못 궁금했다.

얼마 전 극장을 나서면서도 오랜만에 이런 궁금증이 일었다. “어떻게 하면 지적 욕구를 자극하면서, 이렇게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지?” 하지만 이번에는 엔딩 크레딧에서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없었다. 영화가 아니라, 소리를 주제로 진행한 CGV아트하우스의 강연 클래스였기 때문이다. 이에 오늘만은 시네필(Cinephile)을 자처하며 궁금한 얼굴을 직접 확인하러 나설 수밖에 없었다.


S#1. 빛나는 기획의 주인공, 너의 이름은?

▲ CGV아트하우스 극장팀 김휴리 님

소리의 인문학’은 소리를 통해 일상생활을 색다르게 보는 관점을 제시한 인문학 클래스예요. 왜 CGV아트하우스에서 영화 음악이 아닌 소리를 다뤘는지 물으실 수도 있어요. 저희의 고민도 그랬고요. 하지만 영화 음악에 관한 담론은 그간 많이 다뤄왔고, 좀 더 다른 차원의 기획으로 새로운 만족감을 드리고 싶었어요.

다양성 영화를 애정하는 시네필이라면 이제 너무나 익숙할 ‘CGV아트하우스’. 우수한 독립·예술영화 외에도 특색 있는 기획 프로그램을 1년 내내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끝난 ‘소리의 인문학’ 역시 CGV아트하우스 특유의 기획력이 빛난 프로그램이었다.

이 클래스를 기획한 담당자는 ‘김휴리 님’. 차분하면서도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를 얘기할 때 더없이 반짝이는 모습은 상상한 그대로였다. CGV아트하우스는 영화사업팀과 극장팀 2개 팀으로 이뤄져 있는데. 김휴리 님은 상영관과 전용관을 운영하며 영화 편성, 톡(Talk) 프로그램, 기획전 등을 이끄는 극장팀에서 비상설 프로그램 기획과 씨네라이브러리 마케팅을 맡고 있다.


[소리의 인문학 : 소리를 보고 세상을 듣는다]

10월 24일부터 11월 14일까지 4회에 걸쳐 진행한 신개념 인문학 강연. 뮤지션 겸 시인 성기완 교수가 강의를 맡아 화제가 됐다. 시각 공간과 청각 공간의 차이, 근현대를 아우르는 뮤지션, 사운드 트랙의 이해, 영화 음악의 문법 등으로 구성해, 소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감상법을 제안했다.


S#2. 시네필들의 아지트에서 문화예술을 외치다

극장이 단순한 관람 공간을 넘어, 영감과 소통의 장으로 변하고 있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1만여 권의 장서를 둔 국내 최초 영화 전문 도서관인 ‘CGV 씨네 라이브러리’만 봐도, 영화×문학 등 포괄적인 문화예술 경험을 즐기는 것은 트렌드가 됐다.

관객들은 이 영화가 더 나아가서 자신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지를 보는 것 같아요. 여기에는 지적 욕구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죠. 사실 일반 상업 영화와 달리 다양성 영화들은 직접적인 재미보다, 의미 있는 지점을 발견하는 재미가 큰 작품이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배경 지식을 해설하거나 문학, 음악 등을 곁들여 영화를 이해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은 호응을 얻었어요.

‘스크린 문학전’ 또한 시, 소설, 음악 등 문화예술을 아우르는 특별한 기획전. 문학 작품에서 영감 받았거나 직접 영화화한 화제작을 선정해, 매년 5월 영화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고. 예를 들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수 ‘밥 딜런’을 다룬 영화만 모아, 같은 주제로 어떻게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졌는지, 그가 작사한 가사를 영화감독, 영화 평론가, 작가 등과 톡 프로그램으로 살펴보는 식이다.

여기에 극장팀이 또 하나 주목한 부분은 ‘히스토리’가 아닐까 싶었는데.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인 영화인의 업적을 조명하는 ‘한국영화인 헌정 프로젝트’의 경우, 2016년에 처음 시도해 올해 세 번째 헌정관으로 ‘박찬욱 관’을 연 것이다. 이 밖에도 독립영화의 거장 ‘짐 자무쉬’, SF 대표 감독 ‘스탠리 큐브릭’, 서스펜스 거장 ‘히치콕’ 등 세계 거장 감독 특별전을 작년부터 진행해, 요즘에 보기 힘든 옛 작품들을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소개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S#3. 영감은 의외로 바깥에 있다

김휴리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획 과정 역시 녹록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숨은 의미나 미학, 영화사 등 전반을 아우르거나 다양한 니즈를 맞추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매번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해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진짜 좀 괜찮다’, ‘이거 해볼 만하다’하는 아이디어는 오히려 영화 밖에 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제일 경계하는 게, 이 안에 갇혀서 바깥의 대중적인 관점을 잃는 거예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도 저만큼 극장에 잘 안 가더라고요.

업무인 동시에 자신이 가장 관심 있는 일이 영화라, 모종의 거리 두기를 실천 중이라는 김휴리 님. 무용 공연을 보면서 영감을 얻거나 주제 의식을 짚어 보기도 하고, 팀원들과 영화 <올드보이> 속 공간들을 재현한 곳을 찾아 브랜드 간 콜라보 방식도 고민한다고.

뻔한 말이겠지만, 다른 분야의 전시도 많이 참고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저희는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니까. 대림미술관만 하더라도 저희와 타깃이 유사한 부분이 있거든요. 문화예술에 관한 자극을 원하는 2030대라든지. CGV아트하우스 압구정 전용극장처럼 전시 공간마다 차별화된 전략을 펼치고 있기도 하고요.* 각 타깃이 어떤 부분을 선호하는지 관찰하면서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편이에요.

* CGV아트하우스 압구정 전용극장은 최근 젊은 관객이 늘면서,
3개 관에 연령대가 높은 관객의 취향을 고려한 영화, 큰 규모는 아니지만 엣지 있는 영화,
<캐롤>처럼 2030대 관객을 공략하는 영화로 나눠 편성하는 등 공간 운영을 달리하고 있다.


S#4. 협업할 때 ‘덕력’은 나의 힘!

관객의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선, 이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들의 지적 욕구도 무척 중요할 터.


상영 영화를 선정할 때 내부에서 스크리닝 회의라는 걸 해요. 그럴 때마다 완성도면에선 거장 영화에 비할 수 없지만, 매력이 분명하고 관객들이 좋아할 작품이 있거든요. 이런 영화들이 CGV아트하우스에 소개할 가치가 있는지 설득하고 판단하려면, 끊임없이 찾아보는 수밖에 없어요.

그 방법의 하나로 김휴리 님은 팀원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틈틈이 참관하는 것을 꼽았다. 최근에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세계를 다룬 ‘이다혜의 북클럽’과 ‘월간 배우’ 진행자인 김혜리 기자의 신간을 보면서 여러 자극을 받는다고.

기자님들의 강연은 안 보곤 못 견디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듣다 보면 ‘이런 거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의 가지가 뻗어 나가고요. 이분들을 만나서 얻은 풍부한 지식과 영화인의 지혜가 제 영감의 토대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해요.

▲ '이다혜의 북클럽' 클래스 현장

기자 외에도 감독, 배우, 평론가, 큐레이터 등 영화 관련 전문가부터 뮤지션, 작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과 협업하는 김휴리 님. 업무에서는 또 어떤 시너지를 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분의 대다수는 ‘덕심’*으로 일한다고 하잖아요. 성기완 교수님도 언제 만나 보겠어요? (웃음) 3호선 버터플라이도, 그 분 솔로 앨범도 즐겨 들었는데. <소리의 인문학>도 그렇고, 기획한 프로그램이 한 번쯤 협업하고 싶었던 강연자분들을 만나서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낼 때 일하는 재미를 느껴요.

* ‘덕후의 마음’(팬심)이란 뜻의 신조어


[특별 프로그램 ‘이다혜의 북클럽’]

‘도시남녀 1월1독’을 콘셉트로, 영화와 별개로 문학에만 집중하는 독서 가이드 프로그램. 고전에서 최신 장르 소설까지 아우르며, 색다른 독서의 경험을 나눈다. 홀수 달은 소설 다시 쓰기, 짝수 달은 문학상 수상작 만나기를 테마로 정해 큐레이션된 도서를 소개하며, 연관 영화 및 책 소개, 낭독 등을 진행한다. 씨네21 기자이자 북 칼럼니스트인 이다혜 강연자 특유의 재밌고 해박한 해설이 함께한다.


S#5. 가장 따뜻한 피드백, 칭찬

다양한 사람과 기회를 만나지만, 여러모로 경계에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극장팀의 일. CGV라는 멀티플렉스 안에서 한국 독립영화 진흥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대중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금기를 깨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 이에 따른 고충은 없을까?

다양성 영화를 가장 큰 규모로 다루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기대와 우려는 항상 따라붙는 것 같아요. 반 발짝 앞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거나 비슷한 장르를 다뤄도 차별화된 포인트가 있어야 하죠. 그래서 내부에서는 기획전을 하나 해도, 구성원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쏟고 있어요. 처음이라 사례가 부족해도, 속 빈 강정이 되면 안 되니까요. 마치고 나서 관객분들이 좋아해 주시면 그제야 저희도 웃는답니다.

부침의 연속이던 준비 과정도 관객들의 긍정적인 반응이면 잊을 수 있었다는 김휴리 님. 무엇보다 파트를 옮기고 처음 맡은 ‘소리의 인문학’은 강의를 오픈하고 피드백을 받던 순간이 어제처럼 생생하다고.


영화 예매 창에 뜨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많은 분이 보시고, 또 적지 않은 수강료를 결제하고, 이곳까지 오셨는지..! 너무 신기해서 수강 신청표가 한 장 한 장 팔릴 때마다 어떤 분들인지 보고 싶더라고요. (웃음) 현장에서 만난 수강생분들은 음대를 나온 분부터 IT계열 회사원, 40대 이상 관객까지 다양했어요. 항상 클래스가 끝나면 설문을 통해서 관객분들이 선호하는 기획 아이템이나 만족도를 조사하는데. ‘이런 기회를 마련해줘서 고맙다’는 글이 많았죠. 전 제 일을 한 건데, 어떤 사람들에겐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는 게 기뻤어요.

내년에는 아트하우스 클래스를 좀 더 많이 열 계획이라는 극장팀. 이 외에도 화두로 떠오른 페미니즘을 통해 영화를 보는 관점이나 영화사, 인문학, 글쓰기 수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고민 중이라고.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곳에서 다르게 보고, 듣고, 느끼고, 소통하는 특별한 경험을 얻을 거라 믿는다.


/엔딩 크레딧/

신작을 누구보다 먼저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 더 보고 싶은 작품을 잘 기획해 선보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나간 작품이라도, 마이너한 영화라도 잘 만져서 조금이라도 많은 관객이 봤으면 하는 것. 이게 CGV아트하우스에서 저희가 관객분들을 기다리는 이유랍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머릿속에는 엔딩 크레딧 대신 김휴리 님의 이 말이 계속 맴돌았다. 제작진의 열정과 노력이 담긴 엔딩 크레딧처럼 진심 어린 그녀의 바람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지길!


‘세상 곳곳에서 사랑하는 영화를 기억하기 위해
티켓을 모으고 비망록을 쓰는
무수한 당신들을 상상하며.’

– 김혜리, 책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서문 중에서


리포터 까칠한밀크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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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annel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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