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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고 추워지면 이상하게 뮤지컬이 그리워진다. 연애 시절, 뮤지컬 티켓 두 장의 설렘은 왜 이리 아련한 것인지… 연애가 아니면 이런 설렘 없을 줄 알았는데, 손에 넣은 티켓에 주책없이 맘이 들떴다.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 창작 뮤지컬로 초연 중인 ‘햄릿:얼라이브’에 취재 요청을 받았다. 두근두근 ‘연애의 심장’을 장착하고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으로 향했다.


<햄릿:얼라이브> 백스테이지로 들어가다

‘햄릿:얼라이브’의 중심 무대▲ <햄릿:얼라이브>의 중심 무대

<햄릿:얼라이브> 무대는 마치 테마파크의 ‘거울의 방’ 같은 콘셉트이다. 전체적으로 사실적인 공간을 추구하기보다는 상징화되고 미니멀한 무대로 관객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는 설명이다. 고전의 매력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고 현대적인 무대는 회색의 평범한 구조물로 보이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이내 다양한 변주를 시작한다.

<햄릿:얼라이브> 무대에 서보았다. 객석이 보이는 무대에 선다는 떨림이 이런 걸까. 빈 객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묘한 긴장감이 생겼다. 홍광호, 고은성, 양준모 등 햄릿의 배우들이 이곳에서 열연의 땀방울을 떨궜으리라! 그 무대를 살포시 밟아 보는 것으로도… 떨렸다.

무대 위에는 작은 스티커들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배우들의 위치를 표시해 놓은 거다. 나도 모르게 밟고 섰다가 ‘어이쿠, 나 이거 밟아도 되나?’ 싶어서 얼른 옆으로 비켜섰다. 무어라 눈치 주는 사람 없는데, 괜히 성지를 밟은 듯 죄책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햄릿:얼라이브’ 백스테이지▲<햄릿:얼라이브> 백스테이지 공연이 시작되면
배우들은 화살표를 따라 무대로 향할 것이다.

무대 위 기둥의 뒤쪽에는 거울문이 펼쳐져 있다. 거울은 삶과 죽음 그리고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라는 이 뮤지컬의 콘셉트를 상징하는 중요한 오브제로 관객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스태프가 백스테이지 가장자리의 줄을 당기자 마법같이 문이 열리며 객석이 나타났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 이유는 사람이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기도 하고, 기계의 오작동이나 고장으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고.


‘햄릿:얼라이브’ 백스테이지▲ 수많은 기둥에 인식표가 붙어 있다.

무대는 그림이나 커튼으로 뒤쪽을 가리지 않고 기둥만 세운 개방 형태다. 이 기둥 사이를 배우뿐만 아니라 빛이 지나간다. 각 넘버의 절정마다 기둥 사이를 뚫고 펼쳐지는 빛은 비극을 예고하는 복선처럼 느껴진다.

백스테이지에서 바라본 객석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전혀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배우들은 무대 옆으로 등장하거나 퇴장하는데, 거울문을 통해서도 무대와 백스테이지를 오간다. 수많은 기둥으로 공연 초기에는 배우들이 동선을 파악하는 데 꽤 힘들었다고.


‘햄릿:얼라이브’ 백스테이지▲ 결혼식 장면에 등장하는 긴 테이블과 음식 소품들

장례식 음식을 결혼식 음식으로 사용할 정도로 왕과 왕비는 절약 정신이 투철하다는 햄릿의 대사가 떠오른다. 아버지인 선왕이 죽자마자 삼촌과 결혼한 어머니를 비꼬는 말이다.


‘햄릿:얼라이브’ 백스테이지

현대적 해석을 가미한 창작 뮤지컬답게 다양한 색깔의 베레모와 턱시도 등 현대적 의상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햄릿의 노란 티셔츠가 눈에 띈다.


무대를 채우는 빛의 향연

‘햄릿:얼라이브’ 조명 연출

<햄릿:얼라이브> 관객 평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무대가 심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는 꽉 찬다. 아니 꽉 차 보인다.

무대 뒤 회전 거울문과 천정의 대형 거울이 절묘한 타이밍에 조명을 받아 무대와 객석까지도 빛의 향연을 펼쳐내기 때문이다. 연출진은 메인 스테이지에 70개, 무대 뒤 40개, 측면에 60개 총 170개의 조명기를 통해 인물의 심리적인 부분과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때로는 응축되고, 때론 다각도로 확산하는 빛은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로 관객을 이끌어갔다.


‘햄릿:얼라이브’ 조명, 무대 연출

햄릿이 숲을 배회할 때 저 너머 마을의 축제 불빛이 숲으로 새어 들어왔다. 하나의 무대에 두 개의 공간이 빛 하나로 명확하게 구분되다니! 이건 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놀라운 진리.

어디 보자. 저 안개 낀 새벽의 대나무 숲은 무엇으로 이뤄졌는고? 다름 아닌 조명과 거울, 기둥, 그리고 드라이아이스 효과다. 이것만으로 안개 낀 새벽 숲을 표현해 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 비극의 시작 ‘복수를 해다오’ 장면▲ 비극의 시작 ‘복수를 해다오’ 장면

중앙에 있는 빛의 스퀘어 안에서 햄릿과 죽은 선왕의 직접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이 아버지의 동생인 클로디어스의 계략인 것을 알고 복수를 다짐한다.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햄릿과 죽은 선왕이 함께 부르는 듀엣은 정말 압도적!

빛의 변화는 두 인물 간의 교류를 표현한다. 햄릿은 선왕의 유령이 자기 아버지라고 확신하게 되고, 다짐을 하며 그런 심정적인 변화를 조명이 보여준다. 핏빛의 불길한 징조들이 색을 통해 암시를 주고 있다.


‘햄릿:얼라이브’ 조명, 무대 연출▲ 무대 뒤에 자체 발광하는 행성 하나 던져 놓았나?

햄릿이 선왕 유령을 따라 기둥 사이로 사라지는 장면은 안개가 짙게 깔린 새벽 숲을 무대 위에 옮겨다 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게다가 선왕 유령이 강한 빛을 향해 사라질 때 그의 등 뒤의 검은 그림자가 산 자와 죽은 자의 대비를 극명하게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아 소름 끼쳤다. 뮤지컬 하면 형형색색의 무대와 황홀한 군무를 먼저 떠올렸는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 넘버 '사느냐 죽느냐' 장면▲ 바닥에 칼을 꽂는 순간 햄릿의 손에 두 줄기의 빛이 비친다.
햄릿의 결연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빛을 이용한 무대 효과는 <햄릿:얼라이브>를 관람하는 동안 끝없이 펼쳐진다. 넘버가 끝날 때마다 절로 감탄이 터진다. 넘버마다 어떤 효과가 어떻게 구현되는지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었다. 반전 있는 영화를 보고 나서 입이 근질거리는 것처럼. 뮤지컬에도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겠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상징의 무대가 생각과 감정을 폭풍처럼 휘젓다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 넘버 ‘날 용서하소서’ 장면▲ 넘버 ‘날 용서하소서’ 장면

클로디어스가 형을 죽인 죄책감과 왕에 대한 야망을 동시에 드러내는 장면이다. 클로디어스에게 뒤쪽의 석상은 마치 자신이 죽인 형의 모습처럼 보일 수 있고, 햄릿의 입장에서는 지켜야 할 자신의 자리에 대한 상징일 수도 있다.

햄릿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클로디어스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원작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우유부단하다.”, “성격의 모호함이 있다.”라고 햄릿을 비판하는 것도 바로 이 장면 때문. 햄릿이 클로디어스의 죄를 다른 사람이 알기 전까지 복수를 잠시 멈춘다는 설정은 원작과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 오필리어▲ 햄릿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의 죽음 사이에서
죄책감을 느끼다가 미쳐버린 오필리어

거울문 뒤에서 등장했던 오필리어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머리를 풀어헤친 그녀가 엄마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거울문 사이를 기웃거리며 등장할 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저렸다. 휘청거리는 오필리어가 거울에 비친 모습은 분열된 그녀의 자아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듯했다.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 넘버 ‘사느냐 죽느냐’장면▲ 넘버 ‘사느냐 죽느냐’ 장면

태우는 불과 그것을 꺼트리는 물의 대비가 ‘사느냐 죽느냐’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 넘버 ‘연극 속 이야기’ 장면▲ 넘버 ‘연극 속 이야기’ 장면

관객이 뮤지컬에 기대하는 여러 요소 중 ‘스펙터클’은 꽤 상위에 자리 잡고 있다. 현란한 의상과 춤,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배우까지. 언젠가부터 뮤지컬을 찾는 관객들은 은근히 볼거리를 기대한다.

그런 스펙터클이라면 사실 <햄릿:얼라이브>에서는 쉽게 찾기 어렵다. 원래 원작 자체가 호락호락 스펙터클을 허용하는 내용도 아니다. 햄릿은 끝없이 선문답하며 자신의 내면과 현실을 드나든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에서 답을 찾는 햄릿이다.

어떤 화려하고 디테일한 무대 장치가 햄릿이 파고드는 사색의 폭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어떻게 꾸며야 이렇게 가슴 먹먹한 비극을 비극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햄릿:얼라이브>의 기둥과 구멍, 거울과 같은 오브제 그리고 조명은 이 물음에 훌륭한 답이 됐다.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 넘버 ‘새로운 시대’장면▲ 넘버 ‘새로운 시대’ 장면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대해서는 영문학 전공자들도 각자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햄릿을 사랑하는 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통해 전하는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마다 각자 나름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햄릿이 사색하며 선문답을 던지는 것처럼 관객은 무대를 보며 자신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선문답을 던진다. 기둥과 구멍, 거울 그리고 빛은 관객에게 선문답을 던질 수 있는 사색의 장을 열어 준 것만 같다.

뮤지컬 티켓을 들고 연애의 심장을 장착했노라며 볼 빨간 사춘기 소녀처럼 토월극장에 들어섰던 분당댁. 그 소녀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커튼콜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철학자 한 명이 서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너의 삶은 어떠하냐?”라며 묻고 있었다.


뮤지컬 '햄릿 얼라이브' 포스터

뮤지컬 <햄릿:얼라이브>

기간 : ~2018.01.28(일)
시간 : 평일(화-금) 오후 8시 / 주말(토) 오후 3시, 7시 30분 / (일) 오후 2시, 6시 30분
장소 :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
출연진 : 홍광호, 고은성, 양준모, 임현수, 김선영, 문혜원, 정재은, 황범식, 최용민 등
관람등급 : 초등학생이상 (미취학 아동 입장 불가)
관람시간 : 1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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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초동 산 134-1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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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annel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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