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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이 드디어 5월 베일을 벗는다. 그가 8년만에 내놓은 이번 작품은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등 초기 작품세계의 주요 소재였던 일그러진 청춘들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버닝>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감독의 초기 작품을 보는 일.

앞서 소개한 두 작품 중 <박하사탕>(2000)이 오는 26일 CGV 아트하우스의 한국영화 헌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관객을 만난다.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18년 만에 개봉하는 이 작품은 이창동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자, 청춘의 시간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이 영화가 되돌아가고 싶었던 곳은 어디일까? 끝내 그곳에 도착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닳아지는 시간, 나 다시 돌아갈래!


인생이란 뭔가 화려한 것, 거창한 것,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인생이란 구질구질하고 더럽고 고달픈 것의 연속이었다. 끝없는 장애물 경주처럼 결코 그것들을 회피할 수 없었다. -이창동 단편 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


▲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 버리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갈까”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부르는 영호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 “나 어떡해 너 갑자기 가 버리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갈까”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부르는 영호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현재 시점인 1999년을 기준으로 마흔이 된 영호(설경구)는 20년만에 모인 가리봉동 공장 사람들의 야유회 장소에 찾아온다. 20년전 그도 가리봉동 공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삶의 궤적 위에 서있다. 영호는 이 곳에서 음정도 맞지 않는 노래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부르다 갑자기 기차 철길 위에 올라선다.


 ▲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는 어디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는 어디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이윽고.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한 영호. 한국영화가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했다는 상징적인 선언과도 같았을 장면이 이어진다.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를 통해 거슬러올라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박하사탕>은 이 기찻길 장면을 기점으로,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영호 라는 한 남자의 20대부터 40대까지의 시간을 탐색한다. 1999년, 1994년, 1987년, 1984년, 1980년, 1979년. 7개의 챕터(1999년 현재 시점에 두 개의 챕터가 배분되어 있다)로 구분된 시간을 따라가면서 관객은 우리나라 현대사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왔는지, 동시에 한 인간이 어떻게 시간 앞에 마모되며, 역사의 피해자인 동시에 타인에게 가해자가 되었는지를 목도한다.

가리봉동 공장에서 일했던 스무살 순수 청년 영호는 어느 새 진압군이 되어 광주로 향하고, 몇 년 후엔 고문경찰관이 되어 민주화 운동에 나선 청년들을 탄압한다.


 ▲ 영호의 순수성은 어떻게 시들어갔을까?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호의 순수성은 어떻게 시들어갔을까?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20년 전 순수한 청년이었을 때 공장 사람들과 갔던 소풍은 생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겠지만, 20년 뒤 다시 찾아간 그들의 야유회장에서 영호는 불청객일 뿐이다. <박하사탕>에서 영호는 끝없이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찾아가는 인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라는 인물을 따라가면서 끝없이 떠오르는 단어는 ‘불청객’이다.

그러므로 영호가 잘못된 곳에 찾아가고 따라서 잘못된 선택을 내릴수록 그가 가지고 있던 순수함, 청춘은 훼손된다. 그 때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그가 계속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선택과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오로지 영호 개인의 잘못인 걸까?

1980년 5월 광주에서 영호는 누군가를 살해했고 아군의 오발에 맞아 다리를 절룩거리게 된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분명 고문경찰관이며 진압군이었던 가해자 영호를 합리화 하고자 하는 욕구를 작품 내내 내재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물론 영호의 절룩거리는 발은 국가라는 이름의 권력이 그에게 빼앗아간 유무형의 것들에 대한 은유로 읽히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2000년 개봉 당시 관객들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훗날, 이창동 감독이 공직의 복무(2003년 2월~2004월 6월 문화부장관 역임)를 끝내고 참여했던 ‘박하사탕’의 코멘터리에서 그는 작품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 영호는 순임(문소리)이 아닌 가리봉동 공장 함바집 딸 홍자(김여진)를 선택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호는 순임(문소리)이 아닌 가리봉동 공장 함바집 딸 홍자(김여진)를 선택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박하사탕>은 폭력과 가해자에 대한 어떤 합리화가 결코 아니라 현대사와 맞물린 한 인간의 시간을 되돌려 현실 결과의 원인을 찾는 실존적 작업이었다.


망각 앞에 버티려는 시도

▲ 세상의 폭력성은 우리를 어떻게 흔들고 있나?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세상의 폭력성은 우리를 어떻게 흔들고 있나?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이창동 감독에게 있어 <박하사탕>은 영호라는 인물이 어쩔 수 없이 폭력에 물들어간 또 다른 희생자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작품은 아니었다. 감독이 영호를 따라가면서 가졌을 감정은 순수한 청년이 폭력에 젖어 순수함을 포기하고 빼앗기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고자 하는 절박함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감독은 영호에 대한 감정의 접점을 줄이기 위해 대사를 적극 활용하지 않는다. 그저 영호의 몸짓을 기억하려는 듯, 최소화된 카메라의 움직임 속에 그의 처량하고 비루한 몸짓을 담아낼 뿐이다.


▲ 이름 모를 꽃의 사진을 찍고 싶다던 영호는 손 안에 순임을 담는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이름 모를 꽃의 사진을 찍고 싶다던 영호는 손 안에 순임을 담는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호는 말이 없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자신이 왜 변화했는지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자신을 첫사랑 ‘순임’으로 생각하라는 군산에서 만난 술집 종업원 경아(고서희)에게조차 영호는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할 뿐이다.

영화는 영호라는 인물에게 가치판단 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그가 점유해온 시간의 경과를 통해 한 인간이 현대사의 바퀴 속에서 어떻게 마모되어 가는지를 추적한다. 그 끝에 가 닿아 영호가 본 것은 찬란하게 빛나던 봄의 햇살과 땅 위의 꽃들, 그리고 자신의 첫사랑 순임이었다. 그 곳에서야 비로소 영호는 눈물을 흘린다.


<박하사탕>은 2000년 1월 1일,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하는 첫 날 개봉했다. 뭔가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시점에 영화를 공개한 감독은 관객이 영호가 순수로 회귀하는 과정을 보여준 뒤 찬란한 햇살의 따뜻함으로 지나간 시간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 하다.

어쩌면 <박하사탕> 개봉 당시 감독은 극중 영호처럼 시대의 불청객이었던 건 아닐까? 새로이 다가올 천 년의 희망으로 지나온 시간을 묻어버리는 것을 거부하는 불청객 말이다. 여전히 해원되지 않은 고통의 역사 안에서 수많은 이들이 빼앗겨야만 했던 청춘과 순수에게 애도를 표하고 동시에 그 책임을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는 고통스러운 메시지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번 기회에 달콤하고도 알싸한 <박하사탕>의 추억을 만끽하길 바란다.

Posted by SMC 에디토리얼

댓글 2

  • 음유

    지금도 내 인생 최고의 영화

  • 천명에 하나 나올 고문관이 평생 실수와 사고 쳐서...민폐만 끼치다 간다는 허접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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