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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2010)에서 양미자(윤정희)의 ‘시’가 소녀의 육성으로 울려 퍼지는 순간, 이미 많은 시네아스트는 이창동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렸다. 하지만 좀처럼 신작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도희야>(2014)를 제작하는 등 한국 영화 속에 보석 같은 신인 감독들을 발굴했다. 첫 장편이라고는 믿기 힘든 깊은 통찰과 울림 가득한 인물들의 감정을 바라보며 이창동 감독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시>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신작 <버닝>. 베일을 벗은 이번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미스터리 장르를 표방하지만 기존과는 확연히 다른 길을 걷는다는 점이다. 이창동 감독이 펼쳐놓은 시공간 속에서 뿌연 안개 속을 헤매듯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물과 사건, 영화적 무드가 하나로 이어지며 낯선 감정들을 대면하게 된다.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의미를 드러내기보다 사물의 이면에 숨겨진 희미한 진실들을 목도하도록 만드는 영화, <버닝>! 알고 보면 좋을 극중 세 가지 단서를 살펴보자.



첫 번째 단서: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집 <반딧불이> 수록 ‘헛간을 태우다’

▲ 극중 종수(유아인)와 벤(스티브 연)은 모호함과 명증함 사이의 미스터리에 놓인 듯 하다.


우연히 만난 두 남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순간 여자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 옆에는 낯선 남자가 함께였다. 어딘지 미스터리 해 보이는 남자는 헛간을 태울 거라는 말을 남긴다. 그 뒤로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반딧불이>에 수록된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가 원작으로, 기본 이야기 구조는 같다. 하지만 원작은 여자의 사라짐에서 끝을 내는 것과 달리, 영화는 몇 걸음 더 나아가 미스터리의 끝을 향해 돌진한다.

이야기 구조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설정들 또한 같으면서도 큰 차별성을 보인다. 극중 종수와 해미(전종서)가 어릴 적 고향 친구 사이였다면 원작 주인공 남녀는 나이 차이는 열두 살. 게다가 남자는 유부남이다. 낯선 남자 벤은 해미보다 나이가 많은 30대 초반으로 등장하지만 원작에서는 여자 주인공와 같은 또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모호한 시공간 속에서 사건의 발단을 만들어 놓은 채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결말로 끝을 낸다. 이에 반해 이창동 감독은 모호함 속에 희미한 환영을 더해놓아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의미들을 흩뿌려 놓았다. 이 의미들은 때로 분명한 확신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더 큰 미궁 속으로 이끄는 단초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호함이 더 명증(明證)해 보이기까지 한다.


두 번째 단서: 판토마임, 고양이, 남산, 비닐하우스 등 메타포 향연

▲ 극 중 해미는 판토마임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해미는 종수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판토마임으로 귤을 까먹는다. 잘한다는 종수의 칭찬에 해미는 말한다. “간단해.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 능숙한 솜씨로 없는 귤을 까먹으며 해미가 전한 말은 <버닝>이 만들어내는 미스터리의 중요한 단서다.

분명한 실체를 찾으려 노력하기보다는 실체가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 <버닝>의 미스터리는 단서를 중심으로 범인을 찾아가는 미스터리의 기존 이야기 구조와 정반대다. 오히려 분명히 눈에 보이는 증거들에 확신을 가지면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는 구조를 지닌다.

해미가 키우는 고양이는 종수 시야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는다. 남산타워는 해미 집을 향할 때마다 항상 커다랗게 보이지만, 강남에 위치한 벤의 집에서는 남산타워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벤은 비닐하우스를 태울 거라 말하지만 막상 종수 주변에서 타오른 비닐하우스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결국 미스터리 단서들은 일종의 ‘메타포(어떤 언어표상을 그 본래의 의미와는 별도로, 전화(轉化)된 의미로 사용함으로써 본래 표현되어야 할 내용을 간접적으로 명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단서들 속에 숨은 의미들을 따라서 영화의 사건들을 쫓아가다 보면 관객 각자의 지형도 속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 번째 단서: 파주, 반포, 해방촌을 가로지르는 한강

▲ <버닝>에서의 강은 분명하게 ‘한강’으로 묘사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속 공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물줄기가 흐르는 ‘강’이다. <시>에서 강은 소녀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공간이었으며, <밀양>에서도 강은 죽은 아이를 발견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은 인류사에서 문명이 탄생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지형 조건이다. 하지만 생명을 상징하는 물줄기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속에서 오히려 생명이 사라지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버닝>에서의 강은 분명하게 ‘한강’으로 묘사된다. <초록물고기> <시> 등 주로 일산, 파주 등 서울 외곽 중심의 한강을 다뤘던 전작과 다르게 이번에는 서울 중심을 가로 지르는 한강의 지형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파주에서부터 시작해 서울을 남과 북으로 가르는 한강의 물줄기는 종수의 집인 파주, 해미의 집인 해방촌, 벤의 집인 반포를 연결하며 영화 속 공간들을 하나로 연결한다.


▲ 이창동 감독은 근원을 알 수 없는 현시대 속 청춘들의 무력감과 분노가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를 탐구한다.


흥미로운 것은 분명히 영화 속에 지정학적 장소로서 존재하는 ‘한강’이 영화에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조망되지 않는다. 해미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로 한강을 건너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종수의 얼굴에만 주목 할 뿐 창 밖의 한강 풍경을 비추지 않는다. 딱 한 번, 해미의 집 계단에서 바라보는 풍경 먼 곳 어딘가에 희미하게 비치는 한강이 잠깐 보일 뿐이다. 서울에 살면서 남산 타워, 63빌딩, 유람선을 경험해본 자가 많지 않은 것처럼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한강! 이전의 생명 소멸로 대변되었던 공간과는 다르게 <버닝>의 한강은 극의 미스터리를 더욱 부각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메타포로 작동한다.


“지금 젊은이들은 자기 부모 세대보다 더 못 살고 힘든 최초의 세대다. 지금까지 세상은 계속 발전해왔지만 더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없다. 요즘 세대가 품고 있는 무력감과 분노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창동 감독은 <버닝>을 통해서 근원을 쉽게 알 수 없는 현시대 속 청춘들의 무력감과 분노가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미스터리 서사 장르로 탐구한다. 시대적 고통에 동참하고 싶다면 안개처럼 자욱한 <버닝>의 미스터리 안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Posted by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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