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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 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 순박한 말투와 따뜻한 목소리, 투박하지만 진심이 뚝뚝 묻어나던 가슴 뭉클한 수상소감. 지난해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진선규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영화 <범죄도시>의 냉혈안 ‘위성락’ 역을 어떻게 연기 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에게선 사람 냄새가 짙게 풍겼다. 울먹이던 그가 되려 진짜 영화처럼 느껴질 만큼.

 12년이라는 긴 무명의 터널을 지나, 자신의 빛과 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문화가 있는 날 6월 ‘집콘’에서 그를 만났다. ‘마음 속에 간절히 품은 꿈과 그리고 그 꿈이 지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준 집’이라는 주제와 함께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무더위도 잠시 잊을 수 있을 만큼 시원했던 그 시간 속으로 지금부터 함께 가보자. 


꿈을 좇는 사람들 집콘(ZIPCON)으로 모이다  


6월 27일 집콘이 열린 곳은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청수도서관’이다. 이곳은 책과 정원이 어우러진 작은 마을도서관으로 주택을 리모델링해 주민들의 쉼터이자 문화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렉쳐콘서트(lecture concert, 강연과 공연를 함께 진행하는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한 이번 집콘에는 무더운 날씨에도 다양한 연령대 관객들이 참석했다. 모두들 도서관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책 냄새가 풍기는 이곳에서 진선규가 들려줄 이야기는 어떤 향기로 채워질지 사뭇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반갑습니다. 배우 진선규 입니다! 


콘서트 시작 5분 전, 관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배우 진선규가 등장했다. 상기된 얼굴과 마이크를 꽉 쥔 손. 긴장감이 느껴진 것도 잠시, 무대에 서자 능숙하게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에서 베테랑 연극배우다운 모습을 선보였다.


▲안녕하세요. 배우 진선규입니다.▲안녕하세요. 배우 진선규입니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그는 관객들에게 ‘청수도서관’과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 귀띔했다. 놀랍게도 이곳은 도서관 리모델링 전까지 그의 친구 집이었다. 게다가, 대학 시절부터 친구들과 16년간 밤낮없이 연기 연습을 하던 공간이기도 했다. 

추억이 가득한 이 공간에 ‘배우’로 강연을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도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밤잠을 설쳤다며 ‘멋있는 강연보단 관객들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면 힘찬 박수(?)로 알려달라며 너스레도 떨었다.


연기에 대한 꿈을 키웠던 이곳에서 제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배우 진선규가 직접 뽑은 3개의 키워드. 그의 삶의 이정표와 다름 없었다▲배우 진선규가 직접 뽑은 3개의 키워드. 그의 삶의 이정표와 다름 없었다


그는 가장 먼저 고향인 경상남도 ‘진해’에서의 시간을 관객들과 공유했다. 집 앞으로 나 있는 철길, 조금만 걸어가면 보이는 드넓은 바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동네에서 자랐지만 그가 들려준 유년시절은 ‘가난’, ‘친구들의 괴롭힘’, ‘부모님의 불화’로 평범하지 않았다. 매일 밤, 옥상에 올라가 별과 달에게 말을 건네고 하소연을 할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고향집은 어머니와 삼남매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였으며 ‘꿈’을 키운 첫 번째 공간이었다. 

친구들의 괴롭힘을 벗어나기 위해 등록한 체육관. 그곳에서 운동에 대한 재미를 느낀 진선규는 ‘체육교사’란 꿈을 가졌다. 어린시절 꾸었던 ‘수퍼 주인’, ‘문방구 주인’과는 차원이 다른 꿈이었다. 그 꿈은 그에게 평생 가져갈 귀한 인연도 선물했다. 청룡영화상 수상소감에서 언급했던 여섯 명의 친구를 만난 것도 체육관에서다. 그럼 ‘배우’의 꿈을 키운 건 언제였을까? 고3 여름방학, 그는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어놓는 엄청난 경험을 했다.



체육관 친구가 다니는 교회에 우연히 따라갔다가 연극을 처음 접했어요. 행복해하는 형, 누나들을 보면서 저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친구를 따라간 교회에서 우연히 연극을 보게 된 것. 그날 이후 그는 매일 같이 연습실로 향했다. 쾌쾌한 지하 골방에서도 연극 연습에 몰두하는 형, 누나들을 보며 행복을 느꼈고, 수능시험을 두 달을 남기고 연기자로 진로를 정했다. 한 달간 집요하게 연습한 독백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살았던 <진해의 집>. 그곳에서의 힘든 시간들이 운명처럼 그에게 ‘꿈’을 선사해주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오갈 곳이 없어 친척과 지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힘들게 학교생활을 이어나갔다. 금세 지쳐버릴 수도 있었던 상황. 하지만 그에겐 꿈을 위한 에너지을 충전할 수 있었던 두 번째 ‘집’이 있었다. 바로 이곳 <청수도서관>이다. 



강연 시작 전, 그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곳은 절친한 대학 동기의 집이었다. 친구의 부모님은 진선규에게 지하창고를 흔쾌히 내주셨고 그 덕분에 이곳에서 연기자로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 내내, 지하창고에서 연기연습에 몰두하며 보낸 6년이란 시간은 실험적으로 도전했던 ‘아카펠라 뮤지컬’로 결실을 맺으며 큰 주목을 받았다. 졸업 후 2004년 친구들과 함께 극단 ‘공연배달서비스간다’를 만들어 대학로에 진출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이곳, <청수도서관> 지하에서 계속 이어나갔다.


이희준, 김민재 등 동기들과 대학시절 커리큘럼을 다시 시작했어요. 가끔 동네 주민들의 항의도 받았는데, 나중엔 많이 응원해주셨죠(웃음).


진선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동료’와 ‘가족’이다. 연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가진 것이 없었던 순간에도 서로 북돋워 주며 연기의 재미를 알게 해준 사람들이 가족이자 동료였기 때문이다. 이들과 묵묵히 보낸 10년이란 세월 끝에 극단은 인정을 받았고 그는 ‘배우라는 직업’과 ‘연기라는 일’에 대한 신념도 얻었다. 그는 자신을 응원하고 꿈과 열정을 공유한 친구들이야말로 자신의 ‘집’이자 꿈을 위한 ‘충전소’였다고 말했다. 



<청수도서관>을 잇는 꿈을 위한 세 번째 충전소로 그는 <나의 집, 나의 가정>을 꼽았다. 그는 지난 2010년, 극단 동료로 만난 배우 박보경과 결혼했다. 신혼 8개월 차에 카드가 정지되고 쌀이 끊긴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그는 좌절보다 오히려 새로운 동력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뭔기 실패했다는 그런 느낌보다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는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정말로 '연기를 더 잘해야겠구나!' 그 생각이 번쩍 들었죠. 헐거워진 갑옷을 재정비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연기자의 길을 묵묵히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운명처럼 영화 <범죄도시>의 위성락이란 캐릭터를 만났다. 의지가 되는 동료와 든든한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은 뒤, 그는 ‘변해선 안된다’는 말도 듣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자신을 유지하는 것과 더 새로워지는 것의 갈림길이었다. 몇몇 관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는 변할 일도, 무작정 노를 저을 일도 없을 것 같다며 관객들을 향해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진선규가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방향’이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을 게 아니라 지도를 다시 한번 펴고 가야 할 길이 어딘지를 봐야죠. 노를 젓다 빙글빙글 도는 사람도 많이 봤고,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도 많이 봤으니까요.” 라며, “여러 명이 함께 타고 갈 수 있도록 배를 정비하고 동료와 함께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콘서트의 막바지에서 인생의 ‘속도’보다 ‘방향’. ‘방향’보다 ‘사람’이 최우선인 사람 진선규를 만날 수 있었다. 

꿈을 위한 충전소로 집 세 채를 설명한 그는 “각자의 삶에서 좋은 동료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단,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좋아하는 것을 삶의 무게중심 앞에 살짝 두세요. 부딪히거나 시련을 겪어도 덜 아플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들도 꾸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라며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많은 사람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든든한 지원군 ‘이기찬’의 특별한 무대


이날 진선규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가수 이기찬이 참여했다. 오랜 친구처럼 편안한 두 사람의 인연은 진선규의 연극을 보고 감동한 이기찬의 연락으로부터 시작됐다. 가수에서 배우로 새로운 길에 오른 이기찬과 먼저 그 길을 걸어온 진선규. 그리 오래된 인연은 아니지만 ‘연기’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많은 서로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그리고 그 긍정의 에너지가 무대로까지 이어졌다.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에서 오랜 친구 같았던 두 사람. 다시 한번 ‘꿈’이 갖는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모두가 히어로(HERO)입니다” 진선규의 멘트와 이기찬이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머라이어 캐리의 <HERO>로 6월 집콘이 마무리됐다.  



‘속도’가 관건인 세상에 살다보니 ‘꾸준함’이나 ‘끈기’와 같은 단어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다. ‘꿈’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있다면 배우 진선규가 그랬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그 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충전소 ‘집’은 누구에게나 존재할 테니까!     


* 집콘은 사람들의 일상속으로 찾아가 홀수달엔 음악 콘서트, 짝수달엔 렉처(Lecture)콘서트를 진행한다.

문화가 있는 날 페이스북을 통해 누구나 참여 신청이 가능하며 네이버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되며, 모바일과 웹을 통해 무료로 만나볼 수 있다.

Posted by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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