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nel CJ


그리스 출신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작품에는 현실 풍자, 잔혹 동화 설정, 기괴한 이미지, 뒤틀린 블랙코미디, 시험에 놓인 인물들 등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날 선 시선이 담겨있다. <더 랍스터>(2015)의 열린 결말이 “실은 감독이 따뜻한 로맨티시스트가 아닐까?”라는 상상을 자아내게 하지만 그건 단지 오해일 뿐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 <킬링 디어>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지향하는 영화 세계가 무엇인지, 순진한(?) 관객들에게 가장 정확하게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감독의 기괴한 운명적 세계로의 초대, <킬링 디어> 속으로 안내하는 5가지 챕터를 소개한다.



Chapter 1. 희곡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 인간과 짐승 사이의 경계조차 모호해지는 기괴한 운명적 세계가 영화의 배경이다(출처: 네이버 영화)▲ 인간과 짐승 사이의 경계조차 모호해지는 기괴한 운명적 세계가 영화의 배경이다(출처: 네이버 영화)


<킬링 디어>의 영문 제목은 ‘The Killing of a Sacred Deer’. 직역한다면 ‘성스러운 사슴의 살해’ 쯤 될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는 사슴이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사슴과 제물이란 소재를 통해 한 희곡을 떠올릴 수 있다. 영화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중 한 명인 에우리피데스(Euripidēs)가 쓴 희곡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의 영감을 얻었다.

이피게네이아는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 여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서, 희생제물로 바치는 딸의 이름이다. 희곡에서는 여신이 마지막 순간 딸을 가엽게 여겨 사슴으로 대신 제물을 취한다. 하지만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직조한 세계에는 그런 자비 혹은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이나 이성으로 통제 불가능한 극중 이야기는 도덕 혹은 윤리가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결국 인간과 짐승 사이의 경계조차 모호해지는 기괴한 운명적 세계가 영화를 지배한다.


Chapter 2. 심장, 생명 혹은 시계

▲ 극중 콜린 파렐은 성공한 심장전문의로 분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극중 콜린 파렐은 성공한 심장전문의로 분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킬링 디어>는 스크린을 가득 채운 신체 장기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 해부학적 지식이 전무해도, 인간의 육체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심장 밖에 없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첫 장면부터 직설적으로 제시되는 심장전문의라는 주인공의 직업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은유와 상징의 출발점이다.

‘죽음’을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이 심장 운동 정지 순간이라는 점에서, 심장을 다루는 의사인 스티븐(콜린 파렐)은 수술실에서 생과 사를 결정짓는 신의 지위에 있다. 규칙적 반복 운동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장한다는 공통점을 생각하면 ‘심장’과 ‘시계’는 쉽게 연결된다.

그래서 스티븐이 마틴(베리 케오간)에게 하필 시계를 선물하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몇 번이고 연이어 강조되는 ‘고가’의 시계, 게다가 마틴이 입수할 리 만무한 수심 200미터에서도 방수를 자랑하는 이 시계는 심장을 상징한다. 정작 소년이 익사하더라도 수심 200미터에서 살아남을 무적의 심장. 스티븐은 마틴에게 왜 시계를 주었던 것일까? 누구의 심장을 대신하려는 것일까.


Chapter 3. 지독한 비극을 꾸미는 소년의 정체

▲ 니콜 키드먼, 콜린 파렐 못지 않게 스크린을 장악하는 무서운 신예, 배리 케오간(출처: 네이버 영화)▲ 니콜 키드먼, 콜린 파렐 못지 않게 스크린을 장악하는 무서운 신예, 배리 케오간(출처: 네이버 영화)


마틴 역을 맡은 베리 케오간의 얼굴은 낯설다. <덩케르크>에서 비장하게 어선에 올랐다가, 속절없는 죽음을 먼저 맞이했던 소년일 때에도 그는 특유의 순박함 때문에 비극을 강화하는 인물이었다. 뭉툭한 코, 연한 눈동자. 그가 입을 반쯤 벌리고 허술한 미행이라도 할라치면, 그의 정체는 더욱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마틴은 스릴러의 중심이 되는 인물에게 마땅히 드러나야 할 분노, 증오, 광기는 찾아볼 수 없고, 고통이나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있지만, 그 전체를 설계한 것도, 직접 복수를 실천하는 것도 아닌 소년. 소년이 아니라면, 이 지독한 비극을 꾸민 것은 누구인가!


Chapter 4. 가혹한 신의 저주

▲ 스티븐은 가족 중 제물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티븐은 가족 중 제물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


내가 고통 받았으니 너도 고통을 받아라! 내 가족을 죽였으니 나도 네 가족을 죽이겠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외치는 함무라비 법전은 소위 ‘동해(同害)복수법’으로 당한 대로 갚아준다는 인간의 논리에서 출발한다. 이는 다수의 영화에서 수천 번 반복된 복수극의 작동원리로 활용되어왔다.

<킬링 디어>에서는 신의 저주를 통해 더욱 잔인한 동해복수법이 그려진다. 스티븐은 화목했던 가정, 완벽하게 잘 꾸며진 저택에서 자신의 가족 중에 제물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러나 고약한 신의 저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 살아남기 위해 스티븐에게 자신의 가치를 피력하고, 애정과 충성을 맹세하기 시작한다. 이후 지독한 운명의 비극은 누가 하나 죽고 난 다음에도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영원히 이 가족을 괴롭히는 저주로 유효할 것임을 짐작하게 만든다.


Chapter 5. 인간의 욕망과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신의 존재

▲<킬링 디어>의 세계는 관객에게 처음 마주하는 낯선 섬뜩함을 남긴다.(출처: 네이버 영화)▲<킬링 디어>의 세계는 관객에게 처음 마주하는 낯선 섬뜩함을 남긴다.(출처: 네이버 영화)


<킬링 디어>는 과학이나 현대의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몇몇 현상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성과 논리를 요구하는 관객을 무력화시킨다. 사슴 한 번 보여주지 않고, 굳이 대사를 빌어 신의 존재를 이야기 하지도 않는다. 다만, 때로는 바닥을 기어가듯, 때로는 천장에서 모든 것을 내려보듯 움직이는 독특한 카메라 워크는, 인간의 욕망과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어떤 절대자의 존재를 암시한다.

영화의 운명적 비극에 사로잡힌 인간의 무력한 선택을 지켜 보노라면, 그간 줄기차게 극장에서 관람했던 영화들(인간의 의지와 이성을 동원하면, 외계 침략도 물리치고, 행성 충돌도 막아내고, 시간도 되돌리며, 대자연 재해에서도 살아남는 영화) 모두 인간이 고안해낸 교만한 판타지에 불과했던가 싶은 허탈한 생각까지 든다.

 


<킬링 디어>의 세계를 만든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관객에게 낯설고도 섬뜩함을 남긴다. 기존 영화 문법과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그의 화법은 다소 낯설다. 하지만 심장을 꿰뚫는듯한 긴 여운을 남기는 건 외면할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이다. 올 여름, <킬링 디어>에서 감독이 펼치는 독창적이고 기이한 세계에 빠져보기를 권한다.

Posted by SMC 에디토리얼

댓글 Comment : 0

댓글쓰기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17 18 ··· 582 다음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