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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는 그만의 방식으로 1950년대 냉전 시대를 풀어낸 작품이다. 스파이로 오인 받고 살인범 누명까지 쓴 뉴욕의 광고업자인 로저 손힐(캐리 그랜트)을 주인공으로 그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북쪽으로 향하는 이야기다. '히치콕의 첫 번째 007 영화'라고 불릴 만큼 매혹적인 이 작품은 전작 <현기증>의 흥행 실패를 잊게 만들 정도로 상업적 성공을 이뤄냈다. 이후 <싸이코>(1960), <새>(1963)를 연달아 발표하며 각각 관객과 비평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은 바 있다.

이처럼 감독의 전성기 시절을 열게 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완숙한 테크닉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서스펜스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불안과 공포라는 실존의 흔적을 선명하게 추적한 그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지난 16일,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은 ‘히치콕 특별전2’ 개최 기념,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 숨겨진 연출의 비밀을 파헤쳐보자.



첫 번째 비밀, 영화의 진로는 정말 '북북서'로 향하나?

영제인 는 미국 개봉 당시부터 분분한 추측을 낳았다(북북서를 뜻하는 영어 단어는 North-Northwest이므로 한국어 제목은 오역에 가깝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속 대사에서 따왔다는 말도 있고, 스토리에 맞춰 '노스웨스트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하지만 제목에 대한 단서는 히치콕이 모 인터뷰에서 ‘제목엔 아무 뜻이 없다’고 말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쫓아가는 플롯’에 입각하면 영화 자체는 ‘환상’이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도망치는 열차 안에서 만난 금발의 여인 이브 켄달(에바 마리 세인트)이 손힐에게 로저 O. 손힐이라는 이름의 가운데 글자가 뜻하는 바를 물을 때도 손힐의 대답은 "별 뜻 없어요(Nothing)"다. 손힐을 곤경에 빠트린 캐플런이라는 존재는 미국 정부가 만든 가짜 요원이며, 캐플런이 묵는 호텔 방과 그의 정장은 주인없이 옮겨 다니며 가상의 행적을 만든다.


▲ 미술품을 들고 있는 손힐과 켄달(출처: 네이버 영화)▲ 미술품을 들고 있는 손힐과 켄달(출처: 네이버 영화)


노스웨스트 공항에서 손힐에게 정체를 드러내는 미국 요원은 "CIA나 FBI나 ONI나 다 그게 그거지"라고 말하는데, 손힐과 관계된 정부 요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소속과 임무를 가졌는지 영화는 별 관심이 없다. 손힐을 쫓는 악당 반담(제임스 메이슨)과 수하들 역시 소련의 스파이라고 추측될 뿐 정확한 정체를 알기 어렵다. 반담이 미술 경매에서 거금을 주고 산 골동품에는 정부 기밀이 들어있지만, 이 역시 추격 과정에서 맥거핀(macguffin)이 되어 허무하게 사라질 뿐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펼쳐지는 러시모어산 꼭대기(미국 대통령 4인의 얼굴이 새겨진 조각상이 있다)의 저택은 당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모더니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의 작품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저택은 로이드의 작품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실존하는 건물이 아닌, MGM 소속 세트 디자이너가 임시로 만든 것이다. 

가짜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실적인 분위기 탓에 개봉 이후 히치콕은 한동안 '러시모어 산 꼭대기에 정말로 저택이 있나요?' 식의 질문을 들어야만 했고, 이는 히치콕에게 '영화의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요?'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 비밀, 누명을 쓴 남자와 마마보이

극중 사건의 발단은 놀랍도록 허무맹랑하다. 손힐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찾은 레스토랑에 공교롭게도 캐플런을 추적하는 일당들이 있었고, 웨이터가 캐플런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비서에게 전보를 치려던 손힐이 손을 들었을 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대낮에 납치를 당한 그는 가짜를 파는 게 자신의 일이라고 공언하던 광고업자에서 허구의 스파이가 된 것. 이는 관객에게 자발적으로 미스터리를 파헤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동시에, 미국의 허상을 꼬집는 블랙코미디적 감각을 안긴다.


▲ <싸이코>의 노먼 베이츠(출처: 네이버 영화)▲ <싸이코>의 노먼 베이츠(출처: 네이버 영화)


손힐은 태생적으로 유머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지만, 그를 더욱 코믹하게 만드는 설정 중 하나는 그가 소위 마마보이로 묘사된다는 점. 손힐은 겉보기에 강하고 유능해 보이지만, 영화 초반 내내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한다. 어머니의 품을 떠날 수 있게 된 계기는 캐플런이라는 새로운 자아를 반강제적으로 따라가기 시작하면서다. 조금씩 어머니의 영향 아래서 벗어나 그는 이브 켄달과의 사랑을 쟁취하고 자유를 얻는다.

히치콕은 인물들에게 ‘마더 콤플렉스’를 부여해 억압된 섹슈얼리티와 죄의식을 탐구하는데 관심이 많았다. 모성에 대한 강박은 <싸이코> <새>에도 모습을 드러내는데, 특히 <싸이코>에서는 스스로 죽은 어머니를 연기하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노먼 베이츠(안소니 퍼킨스)’가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세 번째 비밀, 한 낮의 드넓은 들판에서 펼쳐지는 추격전

히치콕은 클리쉐(cliché)를 거부하지 않고, 이를 더욱 신선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재조합 하기를 즐겼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옥수수밭 추격 신이 감독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이 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면 그가 여러 대의 카메라 앵글(시점)과 지속시간을 초 단위로 계산하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지녔다는 사실 또한 새삼 깨닫게 된다.


▲ 경비행기에 추격 당하는 손힐(출처: 네이버 영화)▲ 경비행기에 추격 당하는 손힐(출처: 네이버 영화)


손힐이 반담 일행의 계략에 속아 사방이 휑한 들판에 당도한 장면에는 무시무시한 살인마나 폭탄 따위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히치콕은 숨을 곳이라고는 없는 한낮의 드넓은 들판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오싹한 서스펜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간파했다. 

어둡고 은밀한 곳에서 습격을 당하는 편이 자연스러운 스파이 스릴러의 전형을 비튼 설정이다. 멀리서부터 조금씩 다가오는 정체불명의 경비행기와 자동차, 버스를 각각 손힐의 시점숏으로 세심하게 교차시키는 이 장면은 밝은 태양에 잠긴 시골 들판에 생경하고 오싹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네 번째 비밀, 히치콕이 전하는 악몽 같은 이야기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는 <다이얼 M을 돌려라>(1954) <이창>(1954)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1956) 등 1950년대 제작한 히치콕 스릴러 중에서도 첩보물의 전형에 특유의 변칙적인 재미와 서스펜스를 배가했다는 점에서 상업적인 포부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역설적인 것은 가장 대중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플롯 또한 꽤 복잡하고, 흐릿하며, 생략과 비약을 즐긴다는 것이다.


▲살해 장면이 있다는 이유로 세트를 지어 촬영해야만 했던 러시모어산(출처: 네이버 영화)▲살해 장면이 있다는 이유로 세트를 지어 촬영해야만 했던 러시모어산(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서사적 진위와 상관없이 사위를 조여오는 긴장감 그 자체를 동력으로 삼는다. 쫓고 쫓기는 혼란한 상황 이외에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것을 단순히 내러티브가 성긴 오락물의 특징으로 치부하기보다는 히치콕이 내면화한 꿈의 속성으로 읽어보는 방식이 더 유효해 보인다. 히치콕의 영화는 인간의 무의식을 영화 장르와 은밀히 교배시키며 심리학적 사유를 열어준다.

살해 장면이 있다는 이유로 미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해 세트를 지어 촬영해야만 했던 러시모어산 시퀀스를 살피면 이는 좀 더 명확해진다. 집요하리만치 끈질기게 서스펜스 구축에 공들였던 영화는 의외로 매우 급작스럽고 찰나에 가까운 엔딩으로 문을 닫아버린다.


 

영화의 긴 시간 전체가 거대한 맥거핀이 되어 연기처럼 사라지는 순간을 두고 우리는 어떤 정의를 내릴 수 있을까. 이 순간의 당도를 정확히 예측할 리 없는 관객은 그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꿈에서 벗어날지 모른 채 손힐과 함께 허우적거리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어느샌가, 문득 꿈에서 깨어난 자의 기묘하고도 혼미한 쾌감이 찾아온다.

Posted by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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