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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히 짜인 한 편의 영화는, 아이코닉한 인물에 한 걸음 더 다가서는 첫걸음으로써 무척 유용한 매개체가 되어준다. 특별히 그 누군가가, 평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거나 오늘날에는 간혹 잊힌 것처럼 느껴지는 인물일 때는 더욱 그렇다.

<호밀밭의 반항아>는 전기 영화의 미덕을 충실히 따라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집필한 J.D.샐린저의 비밀스러운 삶을 담았다. 그는 빛나는 재치만큼 내면의 깊은 우물을 지녔고, 소설의 명성으로부터 도피해 평생을 은둔자로 살았으며, 문학은 물론 자신의 길고 일관된 생애를 통해 기성 사회의 안온함에 열렬한 냉소를 던졌다. 현대 영미문학의 영원한 지표 중 하나일 J.D.샐린저.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기 전에 살펴보면 좋을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해봤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영감을 얻은 전개 구조

▲ 제2차 세계대전 중 보병으로 소집.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J.D.샐린저(출처:네이버 영화)▲ 제2차 세계대전 중 보병으로 소집.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J.D.샐린저(출처:네이버 영화)


우선 눈 여겨 보고 싶은 것은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의 구조다. 얼개로 보건대 대학 시절부터 중년에 이르는 J.D.샐린저의 시간을 차례로 따라가는 서사이지만, 영화 중반부까지 회상의 구조가 한 겹 더해진 형태라는 점이 뜻밖의 주의를 끈다.

정체가 분명히 감지되지 않는 모호한 시공간 속, 창 밖에서 스며든 푸르스름한 새벽빛에 의지해 편지를 쓰는 샐린저의 모습은 무척이나 불온하고 비밀스럽다. 이는 사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군 생활을 이어가다가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병동에 수용된 상태를 그린 것. 그렇다면 <호밀밭의 반항아>는 왜 하필 이 순간으로부터 이야기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일까?


▲ 홀든 콜필드와 J.D.샐린저는 완벽한 선후 관계를 정립할 수 없이 공명하는 인물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홀든 콜필드와 J.D.샐린저는 완벽한 선후 관계를 정립할 수 없이 공명하는 인물이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대니 스트롱 감독은 J.D.샐린저의 대표작 ‘호빌밭의 파수꾼’의 형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단편 소설을 통해 현대적인 자의식을 가진 인물로서 두각을 드러낸 '홀든 콜필드' 캐릭터가 비로소 공고히 완성된 작품이 1951년 발표된 ‘호빌밭의 파수꾼’이다. 이 작품은 16살의 홀든 콜필드가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단 며칠의 방황을 그린다. 소년의 내면과, 그에 반목하는 세계의 황량한 풍경이 회고체 형식으로 관류한다. 콜필드의 시선으로 여과된 세상은 위선과 허위의식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리고 독자는 곧이어, 콜필드가 현재는 정신병원에서 요양 중인 상태임을 깨닫게 된다.

즉, 홀든 콜필드는 J.D.샐린저가 자신의 삶 위에 문학으로써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가상의 수식을 첨부한 캐릭터다. 그리고 영화는 서사의 전개 방식을 통해 이를 역설하려 한다. 샐린저와 콜필드는 완벽한 선후 관계를 정립할 수 없이 공명하는 인물이라는 사실. 그러므로 이제는 콜필드 캐릭터를 넘어 작가인 J.D.샐린저에게도 더욱 합당한 애호와 존경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니 스트롱 감독의 속마음처럼 읽힌다.


반항아, 외톨이, 그리고 은둔자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에서 J.D.샐린저로 분한 니콜라스 홀트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영화 <호밀밭의 반항아> 에서 J.D.샐린저로 분한 니콜라스 홀트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J.D.샐린저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번번이 낙제와 자퇴를 반복했고, 이는 대학 시절까지 이어져 뉴욕대와 우르사누스대를 중퇴하고 만다. 가업인 고기와 치즈 유통업을 이어받은 유대인 아버지가 부유했던 까닭에 그는 적어도 가난에 웅크리는 법은 없었다.

1939년에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수업을 듣기 시작한 그는 소설가로서 첫발을 내딛는 데 가장 주요한 역할을 했던 위드 베넷(케빈 스페이시) 교수를 만난다. 유창한 언변과 주도면밀한 관찰력을 자랑하는 위드 베넷은 자신이 운영한 ‘스토리’ 지에 셀린저의 단편 ‘젊은이들’(1940)을 실으며, 그의 데뷔도 도왔다.

예상했겠지만 군인이 된 샐린저는 성실함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개시일에 유타주 해변에 한가운데 있었다. 홀든 콜필드 캐릭터를 더욱 발전시켜 보라는 베넷 교수의 격려에 힘입어 총칼보다 원고와 펜을 더욱 소중히 여겼다고. 조금은 믿거나 말거나 식의 과장이 아닐 수 없지만, 전장 속에서 홀로 틈틈이 소설을 써 나간 것만큼은 분명하다. 암스테르담에서 이어진 격렬한 전투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목격한 샐린저는 결국 신경쇠약에 이른다.


▲ 영화 속 샐린저(니콜라스 홀트)와 ‘호빌밭의 파수꾼’(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속 샐린저(니콜라스 홀트)와 ‘호빌밭의 파수꾼’(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출간 이후 ‘호빌밭의 파수꾼’은 현대적인 의식을 키워가던 젊은 독자층에, 그리고 홀든 콜필드와 자신을 동일시한 무수한 아웃사이더들에게 경전처럼 읽혔다. 샐린저는 화려한 사교계 파티에 불려 다니는 것에 신물을 냈고, 빨간 사냥 모자를 쓴 홀든 콜필드를 흉내 낸 열성 팬들이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해 오자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극중 샐린저가 자주 내뱉는 단어 중 하나가 'Phony'(위선의, 가짜의)다. 작가로서의 성공 이후, 그가 그토록 경멸한 세계가 오히려 성큼 다가온 것이다. 샐린저는 곧바로 은둔자의 삶을 택했다. 뉴햄프셔주 교외로 이사해, 말 그대로 세상에 높은 담을 치고 살았다. 2010년 사망하기까지 자택에 칩거하면서 요가와 불교 명상, 채식을 즐겼고 과격한 신비주의 사상에 심취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샐린저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소설의 영화화였다. <워터프론트>(1954) <에덴의 동쪽>(1955)을 만든 엘리아 카잔 감독, <이중 배상>(1944) <선셋 대로>(1950)의 빌리 와일더 감독은 ‘호빌밭의 파수꾼’을 영화화하기 위해 판권에 탐을 냈지만, 샐린저에게 번번이 거절당했다. 엘리아 카잔 감독에게 거절 이유로 "홀든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라고 밝힌 일화는 꽤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 대답이 지니는 무성의함 혹은 완고함이 문학 애호가들에게 묘한 쾌감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삶의 가장자리에서 이상향을 꿈꿨던 파수꾼

▲ 그는 진정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걸까?(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는 진정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걸까?(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호빌밭의 파수꾼’에서 홀든 콜필드는 자신이 사랑하는 매우 순수한 인물들에게만 가끔 뭉클한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구절 하나를 소개한다. 샐린저 자신과 마찬가지로 수수께끼처럼 들리는 소설의 제목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나는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중략)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샐린저는 전쟁의 여파 속에서 더욱 필사적으로 안온함을 추구하려는 시민 사회의 본능이 부조리에의 순응일 수 있음을 지적한 작가다. 그의 예민한 감식안은 1960년대에 도래한 저항의 시기보다 10여년을 앞서 태어난 것이다. 동시에 그의 소설 속에 담긴 차분한 고백 속에는 이상향에 대한 열망과 또렷한 인간애가 숨어 있다.


▲ <호밀밭의 반항아>는 자기만의 책상에 자리잡고 앉아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영화다.(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는 자기만의 책상에 자리잡고 앉아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영화다.(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덧붙여 <호밀밭의 반항아>가 보여주는 샐린저의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의외의 충동을 지핀다. 자기만의 책상에 자리잡고 앉아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영화다. 아마도 그 글은 대체로 일기와 같은 형태가 될 것이다. 이 즈음에서 ‘호빌밭의 파수꾼’이 처음엔 출판 섭외가 무척 어려웠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만 하겠다.

심지어 그에게 매우 호의를 보인 편집자 조차도 "그런데... 홀든은 미친 사람인가요?"라고 되물었다. 샐린저의 경우가 조금 극단적일 지 몰라도, 타인들 사이에서 온전히 이해 받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 내면의 요동을 조금이라도 드러내 보이면 나약한 사람으로 취급될 뿐이라는 두려움은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일상이자 보편의 문제다.


세계와 끝내 대립각을 세우길 멈추지 않는 개인을 위한 일종의 '금서'로써 ‘호빌밭의 파수꾼’은 길고 질긴 궤적을 남긴다. 그리고 삶의 가장자리에 선 작가, J.D.샐린저의 정수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 <호밀밭의 반항아>는 꽤 친절하고 매력적인 창구다.


Posted by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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