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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다! 이내 싸늘한 공기가 호텔 방안을 가득 메운다. 자신들의 속내를 감춘 사내들의 묵직한 대화가 오고 가고, 보이지 않는 기 싸움이 벌어진다. 영화 <공작>은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싸고 위기가 고조됐던 1990년대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첩보 스릴러. 호쾌한 액션 대신 인물들의 눈빛, 대사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약 5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한 이 작품의 성공은 감독과 배우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쓴 스태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 8월부터 CJ ENM에서 진행 중인 영화계 스태프 응원 캠페인 ‘엔딩크레딧을 응원합니다’의 일환으로 만난 <공작>의 박옥경 미술팀장.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을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에 애정이 담겨있었다.

 

영화미술, 꼭 해보고 싶었던 일

▲ 영화 <공작>에 참여했던 박옥경 미술팀장▲ 영화 <공작>에 참여했던 박옥경 미술팀장


박옥경 미술팀장은 어렸을 적부터 영화와 미술을 좋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는 보는 것에 만끽하는 정도. 하지만 고등학교 때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영화미술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촉매제 역할을 한 건 미대 입시 관련 잡지였다. 우연히 보게 된 잡지에서 무대미술과를 나와 영화 현장 스태프로 활약하는 이들의 인터뷰를 봤다. 특히 공간 디자인을 하는 어느 미술팀원의 인터뷰를 눈여겨 보게 된 것. 왠지 모를 쿵쾅거림을 느꼈고,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행복했다.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 후에도 영화미술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드디어 2010년 개봉작인 <헬로우 고스트>에 미술팀원으로 참여했다.

그가 그토록 꿈꿨던 미술팀은 영화의 시각적인 톤앤매너를 제시하고 구현하는 작업을 한다.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콘셉트 스케치, 세트·공간·그래픽·소품 등 화면에 보이는 모든 디자인을 하며, 이후 이를 구현해줄 세트팀, 소품팀과의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얻는다. 프로덕션 기간에는 공간 콘셉트에 맞게 소품 세팅을 하며, 촬영 중에도 미술적인 문제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한다.



현장에 가장 먼저 나와 가장 늦게 들어가는 게 미술팀이라고 할 정도로 업무 자체가 영화 제작 전반에 걸쳐 있다. <헬로우 고스트>를 통해 영화미술로 첫발을 내디딘 그에게 현장은 전쟁터와 같았다.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고, 타 팀과 원활한 협업을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이런 생활이 반복하다 어느 순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 하지만 고비를 넘기고 끝내 버틸 수 있었던 건 이 일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미련이 남았어요. 영화와 영화미술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를 그때 알게 되었죠.


드디어 9개월 동안 열심히 참여한 <헬로우 고스트> 개봉 날이 다가왔다. 그날은 박옥경 미술팀장의 생일이기도 했다. 자신에게 선물을 준다는 마음으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고, 노력했던 결과물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성취감을 맛봤다. 이후 힘을 얻어 <변호인> <무뢰한> <국제시장> <검사외전> 등 다수의 작품에 참여하며 자신의 역량을 펼쳤다.


진짜보다 진짜같이, 공간은 변한다

▲ 극 초반부 등장하는 안기부 안가 입구 초입 암실 장면(출처: 네이버 영화)▲ 극 초반부 등장하는 안기부 안가 입구 초입 암실 장면(출처: 네이버 영화)


<공작>은 1990년대라는 시대적 설정과 우리나라, 중국, 북한 등 공간적 배경이란 특징이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리얼리티 구현’을 중요한 과제로 정한 박일현 미술감독의 지휘 아래, 박옥경 미술팀장은 시대극에 맞는 거리와 간판, 안기부 안가로 설정한 세운상가 등 최대한 관객이 1990년대로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안기부 안가 설정 시 유동인구가 많을 것 같은 세운상가로 설정했다. 당시 디지털카메라가 없었던 것을 착안, 중요 자료 수급을 위해 공작원들이 직접 사진 현상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안가 입구 초입에 암실을 설정했다.


▲ 김정일 별장 내부 컷. 여기가 북한인지 우리나라인지 알길 없네~~(출처: 네이버 영화)▲ 김정일 별장 내부 컷. 여기가 북한인지 우리나라인지 알길 없네~~(출처: 네이버 영화)


고증을 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았던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은 분명 낯선 소재였다. 자료도 많지 않을뿐더러 접근도 쉽지 않았기 때문. 각종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영상 자료는 기본이고 북한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의 사진 자료를 긁어모아 북한의 주요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나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 중 하나가 김정일 별장이다. 극중 흑금성과 김정일의 첫 만남이 이뤄지는 만큼 극 흐름상 중요한 공간이다. 보기만 해도 무게감 넘치는 탁자와 의자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이 그려져 있는 벽화가 한눈에 들어오는 게 특징. 그는 여러 매스컴에서 등장한 북한 국빈 장소에 놓인 탁자와 의자를 참고해 디자인했다. 극 중 북한 최고의 권력자인 김정일이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탁자와 의자에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게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 그는 최대한 이 느낌을 살리는 디자인으로 설정했다. 벽화는 실제 북한에 있는 그림들을 재조합해 세트팀에 요청했다고 한다.


▲ 태블릿에 저장된 공간 및 소품 디자인을 보며 타 팀과 현장에서 조율한다.▲ 태블릿에 저장된 공간 및 소품 디자인을 보며 타 팀과 현장에서 조율한다.


극중 인물들의 심리 변화에 촉매제 역할을 한 담배와 술병 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화면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담배는 북한에서 직접 공수해온 담배를 기반으로 재디자인해 사용했다. 더불어 영화 초반부 김장혁 교수(박진영)과 최학성(조진웅)의 대면에서 등장했던 술병은 당시 출시했던 위스키를 직접 구해서 사용한 것이다.

 

더 나은 영화 작업을 위해 레디 액션!

▲ 미술영역에 국한되지 않은 넓은 시각이 꼭 필요해요.▲ 미술영역에 국한되지 않은 넓은 시각이 꼭 필요해요.


단순히 그 시대와 공간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시대 분위기, 인물의 특성을 잡아주는 역할이 더 중요해요.


최소한의 디테일까지 살리려는 그의 노력은 극중 시대와 공간을 꾸미는 것만이 영화미술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한 계기는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을 하면서부터다. 당시 촬영 중간에 오승욱 감독과 박일현 미술감독이 영화 및 문화 예술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박옥경 미술팀장은 이를 우연히 듣게 되었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들의 대담에 미술에만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시각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인터뷰 도중 두 감독에게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 앞으로 엔딩크레딧에서 제 이름 꼭 확인해주세요^^▲ 앞으로 엔딩크레딧에서 제 이름 꼭 확인해주세요^^


8년 동안 자신의 영역에서 계속 발전을 꾀하고 다른 팀과 협업을 이루며 하나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박옥경 미술팀장.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지만 유독 정통 사극과 연이 닿지 않았다. 그에게 정통 사극은 능력 있는 미술감독이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인 동시에 발전된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 처음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처럼 그 순수한 마음으로 영화 현장을 즐기려고 노력해요. 그러다 보면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겠죠. 앞으로도 좋은 영화로 찾아뵐게요!



박옥경 미술팀장의 바람은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켜줬으면 하는 것이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스태프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좋은 영화 관람을 했다면 스태프들의 이름이 새겨진 엔딩크레딧을 보며 마음속으로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건 어떨까!

Posted by SMC 에디토리얼

댓글 Comment : 1

  • 최슬기

    레드벨벳 조이 닮으셨네요 너무 예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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