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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컬처 칼럼] VINYL IS NEW DIGITAL

▲<제8회 서울레코드페어>(사진 출처: 서울레코드페어 페이스북)▲<제8회 서울레코드페어>(사진 출처: 서울레코드페어 페이스북)


얼마 전 <서울레코드페어>가 열렸다. 올해로 8년 째 지속되는 행사다.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한 이 행사는 올해는 ‘문화역서울284’, 그러니까 옛 서울역 건물을 통째로 빌려 치러졌다. 다녀간 사람만 약 2만명 추산. MP3의 등장으로 음반 시장, 엄밀히 말하자면 물리적 음반을 칭하는 피지컬(Physical) 음반 시장은 죽었다고들 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기현상이라 할 만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곳에서 주로 거래되는 음반은 CD보다는 흔히 말하는 LP, 즉 바이닐(Vinyl)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이 행사를 위해서 발매되는 한정반의 경우도 아침부터 줄을 서 번호표를 받지 못하면 사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이쯤 되면 궁금한 것이 많아질 것이다. CD를 사는 것은 그렇다 치고 바이닐은 대체 왜?


 

바이닐은 노스탤지어의 산물인가?

▲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주인공 롭(존 쿠삭)은 레코드 가게 ‘챔피언쉽 비닐’을 운영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주인공 롭(존 쿠삭)은 레코드 가게 ‘챔피언쉽 비닐’을 운영한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피지컬 음반 시장에서 바이닐 시장이 다시금 커지는 것은 비단 한국의 상황만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닫혔던 바이닐 공장들이 다시 문을 열고 있으며, 한국도 마찬가지. 전세계 음반 매출액 분포를 봤을 때도 점차 그 판매고가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바이닐 열풍을 설명하는데 있어 가장 손쉬운 것은 바로 ‘노스탤지어 코드’다. 이른 바 옛 것에 대한 향수 때문에 사람들이 바이닐을 다시금 소장하기 시작했다는 것. 실제로 주변에 바이닐로 음악을 듣는다 말하면, 비틀즈 같은 것을 추억하냐고 묻는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바이닐을 어린 시절 향유했던 장년층들에게는 이 노스탤지어 코드를 접목하긴 쉽다.

그러나 서울레코드페어에 들러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 요새 바이닐의 가장 큰 구매층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중후반이다. 이들은 절대 어린 시절에 바이닐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세대다. 그들에게는 아이팟으로 대표되는 MP3가 오히려 음악의 원형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다. 스트리밍이나 MP3로 음악을 무형으로 소비해왔던 세대가 최초로 음반을 소장한다는 개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들에게는 ‘음반을 소장한다’는 개념이 새로운 소비 방식 일 테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발현 방식일 테다.


▲ 바이닐 세일즈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나 itunes 다운로드 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출처: 디지털 미디어 뉴스 & 월스트리트저널, 연간 아이튠즈 송 다운로드 수치)▲ 바이닐 세일즈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나 itunes 다운로드 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출처: 디지털 미디어 뉴스 & 월스트리트저널, 연간 아이튠즈 송 다운로드 수치)

2015년 전체 레코드 구매자 중 절반이 25세 미만이었다! (출처: Stories)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대중 매체들은 바이닐 열풍을 너무나도 손쉽게 ‘노스탤지어코드’로 설명하려 한다. 취재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결론을 정해놓고 이야기를 푸는 방식으로 인한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해외의 매체는 이 현상을 다르게 해석하려고 노력해왔다. 특히 최근 BBC는 한 디지털 영상을 내놓으면서 “It's not a nostalgic trend (그건 옛 것을 되찾으려는 향수 트렌드가 아니야!)”라고 단언해 버린다.

몇 년 전 기즈모도(Gizmodo)라는 디지털 매체 역시 "대체 왜 바이닐이 다시 각광을 받는거야?" 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서 이러한 현상을 분석했다. 요약하자면, "Vinyl isn't just music. It's an experience. And one that's worth paying for. (바이닐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충분히 가격을 지불하고 가질만한 총체적인 경험에 가깝다.)" 이는 손쉽게 유튜브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굳이 3~5만원이라는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바이닐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바이닐이라는 매체의 물성을 통해서 해석하려 한다.


인스턴트 적인 음원소비와 총체적인 음악적 경험의 차이


요새 음악을 듣는 방법은 너무나도 손쉽다. 적게는 오천원에서 많게는 만원 정도만 지불하면 전세계의 음악을 제한 없이 들을 수 있는 상황. 그야말로 천국이다. 스트리밍 사이트들은 개별적 음원 프로모션보다는 어떤 무드나 상황에 걸 맞는 음악을 큐레이션해서 들려주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물론 한국의 실시간 차트는 지역적 특성이니 논외로 하자) 때문에 한 아티스트의 앨범을 온전하게 듣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CD를 지나 MP3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음반 개념이 '앨범' 개념에서 파편화된 '음원' 개념으로 옮겨감에 따라 음반 전체를 듣지 않고 곡을 넘기는 스키핑(Skipping) 하는 태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건 음악 시장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보이기도 했다.

아티스트들이 앨범을 만들 때는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앨범의 트랙 위치를 선정하고, 더 거창하게는 앨범 하나를 거대한 세계관으로 보는 이른 바, 컨셉트 앨범(Concept Album)이라는 말까지 있었는데, 이런 작자의 의도가 이러한 환경에선 상당히 흐려진 것.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자신의 의도가 파편화되어 소비된다는 데에 회의를, 리스너 입장에서도 아티스트가 의도한 것을 곧이 곧대로 소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갈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이닐은 이러한 스키핑이 구조적으로 힘들다. 태생적인 불편함 때문에 오히려 완전한 아티스트의 의도가 담긴 앨범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형태가 태도를 만든다는 말이 딱 여기에 부합한다.


▲ 앤디 워홀이 디자인한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앨범. 바나나 껍질을 벗기면 분홍색 속살이 드러날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출처: https://www.solopress.com)▲ 앤디 워홀이 디자인한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앨범. 바나나 껍질을 벗기면 분홍색 속살이 드러날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출처: https://www.solopress.com)


거기에 앨범 아트웍도 바이닐을 구매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큰 힘을 보탠다. 12인치 정방형 사이즈에 담긴 앨범 아트웍은 본질적으로 바이닐을 위해 구현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CD라는 매체로 발전하면서 너무도 작아졌다가, 디지털 시장에서는 단편적인 JPEG 이미지로만 남았다. 그러나 바이닐의 12인치 정방형 사이즈는 그래픽 아티스트들에게 또 다른 캔버스와도 같았으며, ‘앤디 워홀 (Andy Warhol)’ 뿐만 아니라 ‘스테판 사그마이스터(Stefan Sagmeister)’와 같은 아티스트는 앨범 아트웍으로 각광받기도 했다.


▲ 너바나의 ‘Nevermind’ 앨범이 픽셀화되어있다. 디지털은 절대 아날로그 미디어보다 좋을 수 없다는 캠페인 성격의 포스터 (출처: https://www.adsoftheworld.com)▲ 너바나의 ‘Nevermind’ 앨범이 픽셀화되어있다. 디지털은 절대 아날로그 미디어보다 좋을 수 없다는 캠페인 성격의 포스터 (출처: https://www.adsoftheworld.com)


바이닐의 음질이 CD나 MP3보다 좋다는 설도 있다. 당연히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듣는 것보단 좋을 수 밖에. 하지만 보통 사람의 귀로는 그 차이를 알아내기 힘들다. 대신 바이닐을 듣고자 한다면, 턴테이블과 앰프 그리고 스피커가 따로 구비되어야 하는 환경 때문에 조금은 더 하이파이(Hi-fi)적인 리스닝 환경이 조성될 수는 있다. 편리함을 추구하느냐 불편하지만 조금은 더 만족스러운 환경을 추구하느냐의 차이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저 위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 모니터에서 보는 모나리자와 실제 눈으로 감상하는 모나리자는 조금 감흥이 다를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덧붙이자면, 집 안에 소장하고 있는 바이닐 라이브러리는 그 말대로 서점 혹은 책장과 같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원하는 음악을 듣고자 한다면 직접 검색을 하거나, 큐레이션을 통한 발견을 통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듣고자 하는 음악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 하거나 로봇이 추천해 주는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바이닐 라이브러리는 그 사이에서 조금은 다른 위치를 점한다. 서점에 들르거나 집 안의 책장에서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을 골라내는 것과 온라인 서점에서 뒤적거리는 그 차이.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모를 때 눈으로 보고 골라낼 수 있는 그런 차이 말이다. 선택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그 차이. 이 점도 스스로의 피지컬 라이브러리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해낸다.

이렇듯 바이닐은 음악을 담아내는 가장 완벽한 예술적 매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음악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을 표현하는 아트웍까지 가질 수 있는, 그런 총체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매체. 불편하기에 역설적으로 완벽한 음악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매체. 태어난 지 50년이 지났지만 다시금 주목받는 것은 이러한 부분들이 파편화된 디지털 시장에서 새로운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VINYL IS THE NEW DIGITAL

▲ 아티스트와 함께 바이닐 열풍을 점검한 책 <WHY VINYL MATTER> (출처: Amazon.com)▲ 아티스트와 함께 바이닐 열풍을 점검한 책 (출처: Amazon.com)


이런 이유로 감히 ‘바이닐을 새로운 디지털’이라고 칭하기로 한다. 디지털이라는 속성을 단순화시킨다면 저 말 자체는 넌센스이지만, 디지털을 새로운 것이라는 광의로 해석했을 때는 오히려 들어 맞는다.

요즘 세대들은 음반을 소장하는데 있어 바이닐을 최적의 매체로 인식한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 음반을 소유하려 한다. 카세트 테이프(Cassette Tape)와 CD의 시대는 저물고 다시 피지컬 음반 시장의 시작점이자 원형이었던 바이닐이 유일한 피지컬 매체로 남게 될 것만 같다. 바이닐이 스트리밍 시장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마치 지구의 주인이 다시 공룡이 되는 것처럼, 기묘하지만 때문에 곱씹어볼 만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Posted by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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