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머리에 커다란 나사가 박힌, 흉터 가득한 얼굴의 괴물을 창조한 인물?!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쓰여진 지 올해로 200년이 됐다. 지금까지도 많은 작품의 모티브가 될 정도로 사랑 받고 있는 이 소설은 당시 열여덟 소녀였던, 메리 셸리의 작품. 그녀는 어떻게 이런 걸작을 쓸 수 있었을까? 그녀의 인생과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비화를 담은 영화가 여성 감독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오는 20일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이 개봉한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프랑켄슈타인’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괴물이 겪는 고독과 폭력, 편견의 시선이 여성인 작가 본인을 향한 것이었음이 이해되어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 소개와 더불어 작가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 원작 소설과 영화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려 한다. 이는 분명 소설 속 괴물이 작가를 넘어서서 시대 속에서 고독을 느끼는 모두였음을 밝히는 중요한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이동윤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툭하면 영화 보고 운다. 영화의 본질은 최대한 온몸으로 즐기는 것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비화를 담은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포스터.
한 과학자가 죽은 자를 다시 살려 냈다. 신체의 여러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들어진 존재. 그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지만, 자신을 되살려낸 과학자로부터 버림받을 만큼 공포스러운 존재로 각인된다. 누구에게도 사랑 받을 수 없는 그는 결국 자신을 만들어낸 창조주에게 복수를 감행하는데….
사랑 받고 싶지만 아무도 곁에 없을 때, 그 고독이 잔인한 복수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막상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나면 그의 복수에 비판적 잣대를 들이대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비판의 화살은 그를 창조한 프랑켄슈타인과, 그를 ‘괴물’로 인식하고 외면한 차가운 인간성으로 향한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은 작가인 메리가 철저한 고독 속에서 복수심을 불태울 수밖에 없는 ‘괴물’을 창조해 낸 과정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녀의 입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은 죽음, 상실, 배신의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괴물이 경험한 처절한 외면과 그로 인한 분노는 바로 작가인 메리 자신의 것임을 또한 드러낸다.
여성 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 이야기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의 첫 장편 영화 <와즈다>.
하이파 알 만수르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생의 첫 여성 감독이다. 그녀의 첫 장편인 <와즈다>는 자전거를 타고 싶은 소녀, 와즈다의 욕망을 다룬다. 그녀의 부모는 여성이 자전거를 타면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전거를 사주지 않는다. 결국 학교에서 열리는 코란 경전 퀴즈 대회에 출전해 그 상금으로 자전거를 살 계획을 세운 와즈다는 자신의 힘으로 자전거를 갖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이 금지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애쓰는 주인공 와즈다의 면모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속 메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에서 연인으로 등장하는 엘르 패닝(메리 셸리 역)과 더글러스 부스(퍼시 셸리 역).
이혼을 꺼려한 19세기 영국 사회 속에서 퍼시 셸리를 사랑하게 된 메리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하지만 이상주의자였던 퍼시와의 관계가 순탄하지 않았다. 급기야 첫 아이까지 질병으로 잃게 되자 메리는 극심한 절망 속에 놓인다. 감독은 메리의 비극적 경험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며 그녀가 스스로 일어나는 과정을 주목해 보여 준다. 누구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고통을 뚫고 나아간 메리의 강인함은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금지되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첫 여성 감독으로서 하이파 감독의 면모이기도 하다.
메리의 부모, 윌리엄 고드윈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는 급진주의적 사상가 부모의 영향으로, 차별이 난무한 시대에서도 주체적 여성으로 자랐다.
영화는 메리가 아버지인 윌리엄 고드윈과 어머니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명시한다. 윌리엄 고드윈은 아나키즘을 최초로 체계화한 사상가로서 사회악의 근원으로 국가와 사유 재산 제도를 공격하고, 이성의 발달로 국가도 사유 재산도 가족도 결혼도 사라진다는 구상을 제시해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또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서 여성의 인권을 외친 사상가였다. 그녀의 책 '여성의 권리옹호'는 여성을 남성의 보조적 역할로만 보는 기존 사회의 관념에 도전해 여성의 자각과 여성의 교육적·사회적 평등을 주장한다. 여성이 존엄성을 지닌 한 인간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잃어버린 여성의 권리를 되찾아야 함을 피력한 책이기도 하다.
메리는 급진주의적 정치관을 지닌 두 부모의 저술을 접하며 어릴 적부터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주체성을 형성해 나갔다. 특히, 극중 메리는 남편인 퍼시 셸리, 그리고 당대 가장 유명했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과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그들의 방탕한 생활에 젖지 않고 자신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당당한 면모를 드러낸다. 메리가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시대적 주류에서 벗어나 시대의 차별과 편견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영향이 컸음을 느낄 수 있다.
200년간 사랑 받은 소설, '프랑켄슈타인'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는 '프랑켄슈타인'은 그 동안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올해는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한 지 200년 되는 해다. 그 동안 이 소설이 예술계에 끼친 영향력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광범위하다. 특히 4차 산업 혁명으로 인한 포스트 휴먼 논의가 이 책에서 문제시하고 있는 ‘괴물’의 인간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의 테두리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상기해 본다면, '프랑켄슈타인'이 일군 업적이 얼마나 위대한지 가늠할 수 있다.
문학 작품으로서 '프랑켄슈타인'은 SF문학 장르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데, 집필 당시엔 과학의 합리적 사고가 대두된 때였다. 감정보다 이성이 가치 판단에서 우위를 점하던, 사실주의가 강조되던 분위기 한편에서 이성이 아닌 감정·충동을 더욱 강조하는 낭만주의가 싹 틔우던 때, 이 소설은 과학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이성 중심의 사회적 풍토 속에서 외면당하고 고통 받는 타자가 있음을 폭로한 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양 극단으로 나뉘어져 있던 사실주의와 낭만주의라는 두 개의 뿌리를 근간에 두고 우리가 이 시대 속에서 주목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돌아본 작품이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리가 고통을 극복한 것은 모두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메리의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은 메리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인의 생각과 말을 지워 버리고 오롯이 나의 언어가 될 말들 말이다. 메리는 그 조언을 따랐고, 그 결과물이 바로 '프랑켄슈타인'이었다. 극 중 바이런에게 버림받은 동생 클레어는 이 책을 읽고 괴물의 복수를 적극 응원했노라 고백한다. 그의 철저한 고독과 상처를 전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 작품이 오래도록 사랑 받은 이유도 우리 모두가 자신을 창조한 자로부터 버림받고 시대 속에서 외면당한 괴물의 심정에 이입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시간이 변하더라도 각 시대 속에서 괴물과 같은 극도의 고독과 고통이 항상 존재해 왔음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프랑켄슈타인'이 쓰여진 지 200년이 지난 뒤에서야 비로소 저자인 메리에 대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이제는 괴물이 느낀 고통의 근원이 바로 시대의 산물임을, 더 나아가 바로 나 자신의 것임을 영화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메리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넘어선 것처럼, 이 영화가 이 시대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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