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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시장이 저문다고들 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잡지를 사서 본다’는 사람은 몇 없다. 카페에서 커피를 기다리며 잠시 들춰본다거나, 해당 기사의 디지털 버전을 페이스북 피드를 통해 확인하는 정도다. 사실 잡지는 각종 정보의 최첨단을 추구한다. 영국의 패션/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DAZED AND COFUSED)>는 캐치프레이즈를 “BE THE FIRST TO KNOW”라고 적어놓았을 정도. 하지만 한 달 마감 단위로 발간이 되는 잡지는 사실 태생적으로 최첨단의 정보를 담아내기엔 발행주기가 너무 길다.

디지털로 소비되는 정보는 타이핑 몇 번과 클릭 몇 번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배달되어 소비될 수 있다. 잡지는 ‘기획-촬영-인터뷰-기사작성-에디팅-윤색-발행’ 등의 수순을 밟기에 아주 빠르게 담은 정보라 하더라도 최소 일주일은 뒤늦다. 그렇다면 잡지는 죽은 것 일까.


죽은 줄 알았던 잡지 시장의 플레이어 <매거진 B>

▲ JOH Co.가 발행하는 <매거진 B>▲ JOH Co.가 발행하는 <매거진 B>


이렇듯 힘든 잡지 시장에 또 하나의 폐간을 예고하고 등장한 잡지가 있다. 그 폐간은 스스로 선언한 것은 아니다. 잡지 매체가 더 이상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된 시점에 뒤늦게 등장한 잡지라 주변에서 수군거렸다. 더군다나 이 잡지엔 광고도 없다. 한 달에 한 가지 테마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형태로 시작한 이 잡지는 국문판과 함께 영문판도 발행하며, 비단 서점 뿐 아니라 여러 라이프스타일 스토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는 일본의 츠타야 서점을 비롯하여 해외에서도 손쉽게 만나볼 수 있는 글로벌 매거진이 되었다. 그 잡지는 <매거진 B>다.

사실 <매거진 B>를 잡지라는 카테고리에 넣는 것은 부적절해 보일 지도 모른다. 최신의 정보도 없고, 일률적인 잡지의 차례를 따르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광고도 없다. 매달 한 브랜드를 선정해 그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만 담는다. 누군가는 그 브랜드에서 협찬을 받아 기획한다고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협찬의 가능성까지 닫아놓는다. 그야말로 인디펜던트다. 그런데 팔린다. 첫 번째 브랜드로 선정한 ‘프라이탁(FREITAG)’부터 가장 최근의 ‘헤이(HAY)’까지 지금까지 72호가 발간되었다. 현재 잡지 시장에서 유일하게 팔리는 잡지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죽은 줄 알았던 잡지 시장의 또 하나의 플레이어 <뽀빠이(Popeye)>

▲ 일본 매거진하우스의 <뽀빠이(Popeye)>▲ 일본 매거진하우스의 <뽀빠이(Popeye)>


일본에도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한 잡지가 있다. 일본의 매거진하우스라는 곳에서 1976년부터 “Magazine For City Boys”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발행되고 있는 잡지 <뽀빠이(Popeye)>가 그 주인공이다. 다양한 잡지가 여전히 많이 팔리고 있는 일본 시장 특수성을 차치하더라도 (일본에는 책을 읽지도 않으면서 쌓아 놓는다는 의미의 신조어 ‘츤도쿠(積ん読))’라는 말이 있을 정도) <뽀빠이>는 한국 시장에서도 사랑 받는다. 교보문고 일본 잡지 코너에 가면 수북하게 쌓여있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특별한 제호는 금방 품절되어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서점이 아니더라도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셀렉트 숍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뽀빠이>는 매월 발간되는 잡지의 형식을 띄고 1월호, 2월호 등 제호의 형식을 가지지만 매 호마다 관통하는 메인 테마는 매달 다르다. 가령 ‘일본 여행이 처음인 사람을 위한 가이드북’, 이라던가 ‘남자의 방은 어떻게 생겼을까’ 라던가 시의성이 크게 없는 테마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잡지’ 형태와 ‘책’ 기획의 만남!


’잡지’라는 형태와 ‘책’의 깊은 기획이 만났을 때


한국과 일본의 이 두 잡지가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일단 <매거진 B>와 <뽀빠이> 모두 잡지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지만 최신의 정보를 제공하는데 고집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매거진 B>의 브랜드 선정에는 여러 트렌드 등이 작동할 테지만 기존 잡지가 콘텐츠를 다루는 방법론과 매우 다르다. <뽀빠이> 역시 마찬가지. 매달 한 가지 테마를 선정해 각종 패션 아이템과 여러 컬처 콘텐츠를 제공하지만 꼭 그 달에만 봐야 하는 정보는 아니다. 그러니까 최신의 정보가 이 두 잡지의 방향성은 아니라는 것.

엄밀히 말하면 이 두 잡지는 ‘매거진’ 부류라기 보다는 ‘무크지’ 부류에 걸맞다. ‘무크(Mook)’는 잡지(magazine)과 단행본(book)의 합성어이다. 발행 방식은 잡지의 월간 발행을 활용하되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방식은 책을 만드는 것에 가깝다. 잡지는 한 달이 지나면 무용해지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무크지들은 두고두고봐도 무방할 라이프타임 콘텐츠를 담는다. <매거진 B>의 1호인 ‘프라이탁’편은 지금 꺼내봐도 무방하다. <뽀빠이>의 매 제호 역시 기호에 맞게 1년 뒤에 펼쳐봐도 유익하다. 여행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싶다면 서점의 여행 매대보다는 <뽀빠이>의 ‘일본 여행 특집’ 제호를 펴보는 것이 더욱 좋다.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다.)


▲ <매거진 B> 1호인 ‘프라이탁’ 편 영상(출처: <매거진 B> 공식 유튜브 채널)


이러한 기획의 특징은 결국 ‘큐레이션’으로 관통된다. 이미 수없이 퍼져있는 정보를 한 곳에 수렴하여 보여주는 것. 새로운 것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이미 많이 소개된 정보를 한 곳에 모아 보기 쉽게 설명해 주는 것. <매거진 B>는 그 큐레이션의 테마를 매 달 한 브랜드로 정했고, <뽀빠이>는 컬처/패션 전방위적인 것 중에 독특한 테마를 수립해 한 제호를 뽑아낸다. 이렇게 되면 <매거진 B> ‘10월호’가 아니라 <매거진 B> ‘포르쉐 편’ 이라는 수식을 획득하고, <뽀빠이> 역시 10월호가 아니라 ‘일본 여행 특집 편’이라는 테마를 갖게 된다. 그러니까, 두 잡지의 지난 호들은 더 이상 ‘과월호’가 아닌 셈이다.


꺼진 불도 다시 볼 것



<매거진 B>와 <뽀빠이>의 사례가 마케팅이나 디지털 콘텐츠 측면에서도 기능하는 것일지는 살짝 고민이다. 시사점은 분명히 있다. 백이면 백 누구나 죽은 시장이라고 생각했던 척박한 비즈니스에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는 것. 결국 본질은 ‘기획의 차별성’일까. 오늘도 프로그램 기획안을 작성하며 ‘이 기획이 시의성있는 기획일까’ 스스로를 책망하며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그 정도 시사점이라면, 이 긴 글도 [디지털 컬처 컬럼]에 속할 수 있지 않을까. 꺼진 불도 다시 볼 것.


Posted by 사용자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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