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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구성 요소는 사람들. 역사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특히 방향을 일제히 전환해야 하는 혁명의 배경에는 수많은 시민의 힘이 그러모아져 있다. 프랑스 혁명 하면 떠오르는 영화 <레미제라블>이 혁명 이후의 민중의 삶을 그렸다면, <원 네이션>은 그 시작과 중심을 다룬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의 과정을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프랑스 혁명 하면 생각나는 영화는?

▲ 프랑스 혁명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레미제라블>의 장면 중 하나. (출처: 네이버 영화)▲ 프랑스 혁명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레미제라블>의 장면 중 하나. (출처: 네이버 영화)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운 프랑스 혁명은 단조로운 사건의 열거에 불과했다. 삼부회, 바스티유 형무소 습격, 봉건제 폐지, 인권 선언문, 헌법 공포, 국민공회 등등. 낯선 개념과 용어들은 내용보다 순서를 정확하게 암기하는 것이 더 중요한 객관식 단골 문제였다.

그렇게 순서에 집중해 외운 역사적 사건들은 정보의 차원에 잠깐 머물다가, 시험이 끝난 뒤에 흔적 없이 머리 속에서 휘발되어 사라졌다. 오히려 그에 비해 오래 남아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은 그 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혹은 로베스피에르 같은 몇몇 인물들의 이름이었다.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다룬 작품들은 충분히 많다.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프랑스 혁명은 오스칼의 고뇌와 갈등을 폭발시키는 배경이 되었고, 소피아 코폴라가 천연덕스럽게 발치에 운동화를 내려놓았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이 단죄했던 그녀를 사치와 허영의 상징이 아니라, 궁 내부에 고립된 순수하고 평범한 소녀로 묘사하기도 했다.

때로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역사적 인물을 각기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레미제라블>처럼 주인공들의 모험과 로맨스에 더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민중이 승리하는 순간의 프랑스 혁명을 그려내기도 했다.


2019년, 다시 보는 프랑스 혁명! <원 네이션>

▲ <원 네이션>은 거대한 역사라는 것이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로 꾸려진 모자이크임을 시사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원 네이션>은 거대한 역사라는 것이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로 꾸려진 모자이크임을 시사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2014년 다큐멘터리 <르 템스 페르두>를 연출했던 피에르 쉘러 감독은 기존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관점으로 프랑스 혁명을 관찰한다. 그는 혁명이 본질적으로 분절된 단독 사건이 아니라, 혼란과 분열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일련의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위대한 선언문을 작성하거나 앞장서 궐기를 촉구하거나 혹은 단두대로 끌려가는 왕실 가족 대신, 그 시절을 살아낸 평범한 무명의 시민들을 진정한 혁명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혁명의 시간적 진행과 맞물려 바스티유를 습격하던 날 굶주림으로 아이를 잃은 프랑수아즈의 서사가 시작되지만, 그녀와 바질의 에피소드도 혁명에 참여한 수많은 시민의 다양한 서사 속에선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무수한 인물들이 스크린에 나타났다가 속절없이 사라지는 <원 네이션>. 피에르 쉘러 감독은 숫자와 사건으로 기록되는 거대한 역사라는 것이, 실은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로 이루어진 모자이크라는 사실을 새삼 강조한다.


기적을 이룬 혁명의 주인공들

▲ 영화는 유독 여성들의 얼굴에 시선을 놓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유독 여성들의 얼굴에 시선을 놓는다. (출처: 네이버 영화)


<원 네이션>은 프랑스 혁명의 주인공인 시민 중에서도 여성들의 얼굴을 유독 부각시킨다. 베르사유 궁으로 행진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를 비롯,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이 없어도 의회의 방청석에서 밤새 귀를 기울이고 서로 독려하며 혁명의 현장에 참여하는 여성들. 생존을 위한 빵을 요구하던 그녀들이 시민의 권리나 자유에 대해 토론하고, 정치와 처벌, 용서에 대해 고민하며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혁명이 현실의 삶에 가지고 올 수 있는 가장 엄청난 변화 혹은 기적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권리와 의무는? 프랑스 혁명의 의미

▲ 감독은 영화 전반에서 인간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출처: 네이버 영화)▲ 감독은 영화 전반에서 인간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출처: 네이버 영화)


<원 네이션>의 서사는 인물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시간 순서대로 제시되는 사건, 혼란과 갈등, 분열과 배신의 양상이 언뜻 역사 수업을 연상시킨다. 루이 16세의 처형을 앞두고 밤새 이어지는 의견 발표와 투표가 그러하다. 그러나 언뜻 지루한 반복처럼 보이는 이 장면에 감독의 야심이 숨어있다.

‘투표 결과 처형을 결정했다’라는 문장에서는 결코 감지할 수 없는, 그러나 그 순간 존재했던 많은 이들의 고민과 갈등, 인간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질문, 그 깊고 지난한 심사숙고의 과정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밤을 새워 가며 인간의 권리와 자유에 대해 토론하고, 다른 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신중한 판단을 모색했던 그 시간들이야말로 프랑스 혁명의 근간이자 이제껏 유효한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이라는 사실에 수긍하게 될 것이다.



역사라는 모자이크의 한 조각에도 수많은 사람과 시간이 담기는 것이 분명하다. <원 네이션>을 보고 나면, 앞으로 프랑스 혁명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영화 제목이나 어떤 인물의 이름보다 이름 없는 어떤 얼굴들, 시민이나 인간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다. 프랑스 혁명을, 그리고 역사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테니까.


Posted by 사용자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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