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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대부인 짐 자무시가 호화로운 출연진을 데리고 좀비 영화를 만들었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공개된 <데드 돈 다이>가 바로 그것. 블랙 코미디와 B급 호러 장르, 짐 자무시 특유의 정적인 리듬이 공존하는 이 기묘한 영화는 물질주의와 차별이 팽배한 우리 시대를 겨냥해 오싹한 한탄을 날린다. 죽지 않는 욕망들로 뒤덮인 이 세계를 짐 자무시는 과연 어떻게 바라봤을까?



좀비, 이 시대를 겨냥하다! <데드 돈 다이> 

▲짐 자무시 감독이 빌 머레이, 아담 드라이버, 클로에 세비니, 틸다 스윈튼과 함께 돌아왔다. 그것도 좀비 영화로.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조지 로메로 감독이 대형 쇼핑몰에 난장판을 벌이는 좀비(<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1968)를 출현시킨 이래, 좀비는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물질주의에 잠식 당한 무력한 개인 혹은 거대 팽창한 소비 욕망을 의인화한 존재가 곧 좀비였다. 하물며 오늘날엔 풍자의 산물인 좀비가 미디어 산업에서 가장 잘 팔리는 콘텐츠가 되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이민자와 노동자, 이방인과 예술가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그렸던 짐 자무시 감독은 <롤링 스톤즈>와의 인터뷰에서 “난 좀비라면 아주 지긋지긋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데드 돈 다이>는 좀비의 세계를 싫어하는, 그러나 부정할 수는 없는 현대의 창작자가 만든 부조리극으로서 꽤 지독하고 재밌는 염세를 내비치는 영화다.


▲짐 자무시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에 출연한 틸다 스윈튼이 이번엔 기묘한 장의사 역할로.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느릿하고 일상적으로 묘사되는 극 중 마을 풍경을 잘 들여다보자. 인구 800명이 사는 작은 센터빌 마을. 백인 우월주의자인 프랭크(스티브 부세미)는 식당에서 블랙 커피를 마시다 흑인인 행크(대니 글로버)의 심기를 거스르고, 숲에 사는 은둔자 밥(톰 웨이츠)에 대한 혐오감을 적나라하게 표한다.

또, 식당 주인인 펀(에스터 벌린트)은 출신을 알 수 없는 기묘한 장의사 젤다(틸다 스윈튼)의 소식을 캐물으며 이방인에 대한 묘한 불신을 드러낸다. 좀비가 본격 출현하기 전, TV와 라디오에서는 극지대의 시추 작업이 지구의 자전축을 이동시키고 있다고 보도하며 에너지 기업은 이를 극구 부인한다. 정부 또한 시민을 안심시키는 데 급급할 뿐이다.

이처럼 환경 파괴와 인종 및 외국인 차별 이슈를 건드리는 <데드 돈 다이>의 배경 묘사는 칸국제영화제 공개 직후 트럼프 시대를 겨냥한 비판극이라는 평가를 적잖이 낳았다.


와이파이를 찾는 좀비는 곧 누구?

▲ 좀비로 깨어난 그들이 외치는 단어들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블랙 코미디 포인트.(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땅 속에서 살아난 시체들이 하나 둘 달려가는 곳은 다름아닌 마을 곳곳의 가게. 저마다의 필요에 따라 상점에 가서 물품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읊는 좀비들의 모습은 영화의 가장 강력한 블랙 코미디 포인트다. 특히 와이파이를 애타게 찾는 좀비 앞에선 얼마간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에게 인류 멸망의 공포를 자극하는 좀비물의 전형에 짐 자무시의 영화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데드 돈 다이>에 종말과 재난은 없다. 그저 지구의 리듬이 바뀐 것일 뿐, 세계는 지속된다.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들의, 인간이 아닌 좀비들의 세상이 되었을 뿐. 짐 자무시는 그들이 여전히 전처럼 ‘소비’ 중이며, 이 좀비들의 세상이야 말로 우리의 현재가 아닌가 하고 쓸쓸한 웃음을 던진다.


▲이 영화의 주연들(아담 드라이버, 클로에 세비니, 그리고 빌 머레이)은 모두 감독의 오랜 동료들이다.


특히 <데드 돈 다이>의 인물들은 부르주아가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 노동자들이며 출연하는 배우들 모두 짐 자무시의 오랜 동료들이다. 감독이 애호하고 자신과 동일시하는 배우들의 총집합에 가깝다.

짐 자무시의 데뷔작 <천국보다 낯선>(1984)의 3인방 중 에바를 연기했던 에스터 벌린트의 반가운 복귀를 시작으로, 빌 머레이, 톰 웨이츠, 스티브 부세미, 틸다 스윈튼, 사라 드라이버, 이기 팝, 클로에 세비니, 아담 드라이버와 같은 자무시의 친구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좀비 꼴을 면치 못한다. 심지어 자무시는 셀레나 고메즈를 비롯한 젊은 배우 세 명을 캐스팅해 클리블랜드에서 온 힙스터 무리를 연기하게 함으로써 <천국보다 낯선> 속의 아이코닉한 캐릭터들까지 영화에 재현한다.


<데드 돈 다이>는 <패터슨>의 연작? 

▲짐 자무시 감독의 두 영화 <패터슨>과 <데드 돈 다이> 사이의 연속성을 어떻게 봐야 할까?


영혼을 빼앗아가는 물질주의의 끈질긴 생명, 그 부패한 냄새를 담아낸 <데드 돈 다이> 이전에도 짐 자무시는 또 다른 영생에 관해 말한 바 있다. 지난해 발표한 전작 <패터슨>(2018)에서다. 이 영화에서 그는 시간을 뚫고 달려와 우리 일상을 구원하는 것으로써 예술을 이야기했다. 집요하고 반복적인 노동, 귀가 후 산책, 시 쓰기로 요약되는 패터슨의 삶에는 시스템의 속박을 최소화하려는 자발적 선택이 깃들어 있다.

반면 <데드 돈 다이>의 일상은 예술이 거세된 채, 소비와 소유로 이루어진 사회다. 커피와 도넛을 찾고, 테이크 아웃 음식을 사고, 굿즈를 수집하고, 친환경 스마트카를 타거나 아주 비싼 차를 탄다. 죽음마저 자본에 의해 치장된다는 사실을 장의사의 존재로 보여 주기도 한다.


▲<패터슨>에선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드라이버, 패터슨 역을 맡은 아담 드라이버.(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소도시 패터슨과 센터빌, 아담 드라이버라는 배우, 인물과 공간의 반복적인 등장. 이와 같은 동일한 미니멀리즘적 세팅 아래 <패터슨>은 예술이 떠받치는 자족적인 삶의 찬란함을, <데드 돈 다이>는 종말의 불안을 억누른 채 소비하며 사는 삶의 위험을 말한다.


감독이 찬미하는 예술의 울타리를 벗어나자마자 세상은 이토록 어둡고 흉흉하다. <패터슨>에서 낙관론자에 가까웠던 아담 드라이버는 <데드 돈 다이>에서 "분명 끝이 안 좋을 거에요"라는 말을 반복하는 지독한 비관주의자로 변모했다. 그러므로 짐 자무시는 두 편의 영화를 통해 곧 일상의 변증법을 논한다. <패터슨>의 찬란한 매일은, <데드 돈 다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이 되어 우리에게 실존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Posted by 사용자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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