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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 낯설지만 친근한 외할머니와 그런 그를 내치기만 하는 손자가 바로 그 주인공들. 2002년작 <집으로…>가 오는 9월 5일 재개봉한다. 많은 이들은 이 영화를 할머니의 추억에 떠올리게 하는 동화 같은 영화라 명절에 관객을 만난다고 알고 있지만,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과연 <집으로…>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이정향 감독은 누구? 백 투 더 1990’s~

▲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 <오늘>을 연출한 이정향 감독(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 <오늘>을 연출한 이정향 감독(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1998년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장편 데뷔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세 편의 장편영화(<집으로…> <오늘>)을 연출한 이정향은 그야말로 ‘과작의 감독’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미술관 옆 동물원>과 <집으로…>는 해당 작품이 등장하던 시기의 한국영화의 흐름, 혹은 맥락 속에서 인상적인 지점을 만들어낸 영화들이기도 하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7)는 한국영화가 ‘산업’으로 재편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 흐름의 반대편에서 1990년대 말의 시간 동안 작가들은 ‘대안적 상업영화’라는 새로운 형태를 제시했다. 장르적 관성 안에 이야기를 태우면서도 그 장르에는 생략하곤 하는 묘사들을 적극적으로 끄집어내거나, 혹은 의당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던 순간을 삭제해버리거나, 혹은 기대를 배반하거나, 최후의 순간까지 장르에서 보여주길 기대하는 그 순간의 도착을 유예하는 영화들. 특히 그 중에서도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 이은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정지우의 <해피엔드>, 장윤현의 <접속>, 그리고 이정향의 <미술관 옆 동물원> ‘멜로’의 형태를 띤 일련의 작품들이 보여준 성취는 주목할 만하다.


▲ 이정향 감독의 장편 데뷔작 <미술관 옆 동물원>(1998)▲ 이정향 감독의 장편 데뷔작 <미술관 옆 동물원>(1998)


<미술관 옆 동물원>은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인지해 나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에는 보편적인 접근과 조금 다른 구석들이 보인다. <미술관 옆 동물원>은 서로의 다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나를 변화시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서로의 다름을 인정한 채로. 서로가 원하는 것을 존중하되 나 자신의 원래 모습을 잃지 않은 채로 서로의 삶을 끌어안는 성숙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들이 보인다. 이 ‘성숙한’ 태도를 구현하는 극중 캐릭터들은 ‘미성숙’하다. 감독은 미성숙 캐릭터를 통해 ‘성숙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쉽지 않은 성취를 이뤄낸 작가다.


<집으로…>, 이정향 감독의 두 번째 미성숙 프로젝트!

▲ 9월 5일 재개봉하는 <집으로…>▲ 9월 5일 재개봉하는 <집으로…>


<집으로…>는 첫 개봉할 때도, 재개봉을 앞두고 다시 언급될 때도 자애로운 외할머니와 천방지축 손자의 이야기로 묘사된다. 물론, 이것은 <집으로…>를 가장 압축적이고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임엔 틀림이 없다. 손자 상우(유승호)는 보호자인 어머니의 사정으로(아버지는 부재한다) 인해 잠시 시골 외할머니댁으로 내려간다. 말을 할 수 없는, 그리고 아마도 평생을 시골에서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할머니(김을분)를 서울에서 태어난 상우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영화는 자연스럽게 상우가 외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외할머니와 자신의 정서적 연결을 소중히 여기면서 마무리 된다. 보편적인 가족 멜로 드라마와 다를 것이 없는 구성이다.

하지만, 감독이 이정향이다. 다시 한번 복기하자면 그는 장르적 관성 안에 이야기를 태우면서도 그 안에서 생경한 지점들을 끄집어 내는 데 능숙하다. <집으로…>는 마냥 외할머니와 손자가 겪는 짧은 여름날의 동화로 설명하기엔 여전히 어딘가 까끌거리는 지점들이 있다. 이 지점들이 영화를 보면서 순간순간 덜컥 생각을 멈추게 한다.


▲ 영화 초반부, 관객이 상우라는 캐릭터에게 느끼는 감정은 이정향 감독의 영화적 특성을 인지하게 한다.▲ 영화 초반부, 관객이 상우라는 캐릭터에게 느끼는 감정은 이정향 감독의 영화적 특성을 인지하게 한다.


영화에서 상우가 처음으로, 외할머니를 만난 뒤 직접적으로 외할머니에게 건네는 대사는 “벙어리, 병신”이다. 아무리 ‘아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용납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상우는 이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말을 할 수 없는 외할머니는 이 단어들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혹은 견뎌낸다). 이정향은 흔히 말하는 ‘잔잔한 영화’들을 만들었지만, 이 영화들 속에 등장하는 표현들에는 순간순간 날카로운 칼날을 장치해두곤 했다.


아름답지만 결코 아름답지 않은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는 지금의 기준으로도 꽤 직설적인 성담론이 등장하고, 범죄피해자인 연인을 잃은 한 여성의 이야기인 <오늘>에서는 ‘용서’를 강요하는 이들의 강권이 어떻게 범죄피해자의 가족들을 참혹하게 만드는 지를 묘사하기도 한다. <집으로…>는 이정향의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동화적인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를 전달함에 있어서 마냥 아름다운 방식을 택하지는 않는다.

상우의 행동들은 어떻게 해도 용납할 수 없는 범주 바깥으로 끊임없이 벗어나고 외할머니는 그저 묵묵히 견뎌낸다. 이 상황을 보고 있으면, 상우 라는 캐릭터에게 느껴지는 비호감의 감정들, 혹은 분노의 감정이 당연하다고 믿게 된다.


▲ 타인과의 소통에 서툰 상우의 모습을 누구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는가▲ 타인과의 소통에 서툰 상우의 모습을 누구의 잘못으로 돌릴 수 있는가


하지만, 상우는 올바른 돌봄을 받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배경들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영화 시작 이전부터 이미 부재하고, 어머니와 상우가 할머니의 집으로 가는 초반의 기차, 버스 신들을 보면 상우는 어머니와의 스킨십(언어적, 비언어적)을 애초에 포기하고 장난감과 게임에 몰두해 있다. 상우의 어머니는 힘든 삶에 지쳐 있었다는 것이 외할머니와의 대화장면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집으로…>의 초반부는, 사실은 꽤 암울한 인물들의 배경을 설명하는 구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상우가 외할머니에게 ‘벙어리, 병신’이라고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는 건 상우가 타인과 이야기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상우 어머니의 잘못 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지만, 상우는 정서적으로 누군가와 충분한 교감을 얻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상대와 대화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이때, 과연 상우만의 잘못이라고 우리는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아이 성장의 자양분은 올바른 어른의 사랑

▲ 오로지 치킨을 먹겠다는 일념하에 “꼬꼬댁”을 외치는 상우. <집으로…>의 시그니처 장면▲ 오로지 치킨을 먹겠다는 일념하에 “꼬꼬댁”을 외치는 상우. <집으로…>의 시그니처 장면


이정향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마음을 살피고, 대화를 하는 방법을 알려줄 보호자로 아예 말을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외할머니를 붙인다. 물론 외할머니를 연기한 김을분 옹께서 실제 직업배우가 아니라는 현실적 한계도 작동했겠지만, 말을 할 수 없고 가끔 보여주는 몸짓만으로 소통해야 하는 외할머니는 상우가 적극적으로 내 앞에 있는 발화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노력을 하도록 유도하는 선생님이 된다.

외할머니가 마을에 함께 사는 노인의 집에 찾아가 영양제를 주는 장면에서, 외할머니의 신체언어를 상우가 잡아내는 장면들은 상우가 ‘성장’ 했다는 것을 영화가 직접적인 대사로 설명해주지 않으면서도, 억지로 감동을 자아내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가 올바른 보호자로부터 사랑을 받았을 때 어떻게 변해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집으로…>의 메시지는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향한다.▲ <집으로…>의 메시지는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향한다.


어린이문학은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밑뿌리로 되어있어야 하는 문학이다.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란 아이들의 귀여움에 빠져버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 마음, 아이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깊이 이해하여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풀어주고 그들이 사람답게 자라나도록 하려는 정신이 곧 어린이 사랑이다

- 이오덕 작가 -

 

‘아이’를 떠올렸을 때 어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들. 이를테면 ‘귀여움’, ‘사랑스러움’, ‘예의바름’은 말 그대로 어른들이 자신들의 노력 없이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행동양식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타인과 관계 맺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아이들을 지켜주고 바라보아줄 책임감이다.

 

결과적으로 이정향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추억을 곱씹는 기회의 장을 열어주는 게 아닌, 책임감 있는 어른이 아이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묻는다. 이는 17년 전과 현재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감독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가 속한 장르의 규칙들을 지켜내면서도, 동시에 장르의 규칙 바깥으로 계속 질문들을 던지는 작가주의적 태도가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올 추석, <집으로…>를 비롯해 이정향 감독의 영화를 보며 진정한 어른으로서의 자세,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다잡는 기회를 갖기 바란다.

Posted by 사용자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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