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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직장의 모든 직원들이 단체로 결근을 한다. 이유는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단체 결근이라는 집단적 상황은 그들이 밝힌 이유에 또 다른 의심을 낳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두 가지 기로에 놓인다. 그들이 밝힌 결근 이유를 믿어줄 것인가? 아니면 분명 다른 의도가 있을 거라 판단하고 의심할 것인가? 영화 <메기>는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제작은 국가인권위원회, 주제는 청년!

▲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인권영화 프로젝트 작품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인권영화 프로젝트 작품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메기>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02년부터 지속해오고 있는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열네 번째 작품이다. 그간 장・단편의 극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넘나들며 다양한 형식 속에 한국의 인권 상황을 녹여내 왔던 프로젝트로서 참여한 감독들의 면모 또한 화려하다. 박찬욱(<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2002)), 임순례(<그녀의 무게>(2002), <날아라 펭귄>(2009)), 류승완(<남자니까 아시잖아요?>(2004)), 방은진(<진주는 공부 중>(2008)) 등의 기성 감독 뿐만 아니라 강이관(<범죄소년>(2012)) 등의 신인감독, 오멸(<하늘의 황금마차>(2013)) 등의 독립영화감독까지도 폭넓게 참여해 유의미한 성과들을 쌓아온 프로젝트다.

2018년도에 완성된 <메기>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청년’이란 소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 속에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과 고민, 애환과 낭만을 잘 녹여낸 작품이다. <메기>를 인권영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영화 속 인물들을 가상의 세계 속 존재가 아닌 현실에 공존하고 있는 존재들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청년의 인권’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메기>의 영화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고 따라가기 위한 단서이기도 하다.

 

화자인 ‘메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 연인 사이인 윤영(이주영)과 성원(구교환)의 일상 모습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연인 사이인 윤영(이주영)과 성원(구교환)의 일상 모습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메기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화각이 넓은 렌즈를 ‘어안렌즈’라는 부르듯이 물고기의 시야는 인간의 시야보다 훨씬 넓다. 보다 넓은 각도로 세상을 바라보니 그 만큼 인간이 볼 수 있는 진실보다 더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극중 메기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화자로 나온다. 영화의 도입부, 메기는 자신이 보고 목격한 바를 여가 없이 진술하는데 그 내용은 주인공 윤영이 밝히고자 하는 진실과 도 연결되어 있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존재로서 메기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주인인 동시에 서사를 이끌어가며 더욱 흥미로운 상황으로 전개하도록 만드는 안내자 역할도 맡는다. 환자가 키우던 물고기를 맡았다는 윤영의 말에 남자친구 성원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버려진 거네.” 버려진 존재로서 메기가 바라보는 세상의 진실. <메기>는 인간은 볼 수 없는, 메기만이 볼 수 있는 진실을 쫓아가는 영화다.

 

싱크홀, 구덩이에 빠졌을 땐 즉시 빠져나오세요~

▲ 재개발 구역에서 시위 중인 사람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재개발 구역에서 시위 중인 사람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싱크홀은 지하수가 있던 자리에 물이 빠져나가 빈 공간이 형성되며 발생한다. 단단한 암반 지역 보다는 퇴적물이 쌓여 단단하게 형성된 퇴적암 주변으로 많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도시를 세울 때 땅 속의 성질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서 도심 속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환경적, 사회적 재난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메기>에는 커다란 싱크홀이 두 번 발생한다. 도심 한 가운데에서 발생하는 싱크홀은 분명 재난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다수의 시민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오히려 싱크홀을 메꾸는 작업에 청년 일력들이 동원되어 일자리 창출의 효과까지도 발생한다. 재난을 풍자한 영화적 시선은 끝없는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이를 비극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현 시대의 단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영의 대사를 통해서 영화는 극명하게 제시한다. “우리가 구덩이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메기> 속 경진(문소리)의 대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다.

 

결국 모든 것은 믿음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 병원 앞 성상에 걸려 있는 엑스레이를 바라보는 병원 사람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병원 앞 성상에 걸려 있는 엑스레이를 바라보는 병원 사람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병원에서 이상한 엑스레이가 발견된다. 사진 속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내려 하자 병원 직원들이 모두 휴가를 내버린다. 텅 비어버린 병원에서 간호사인 윤영과 부원장인 경진은 직원들이 단체로 휴가를 낸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고민한다. 모두가 엑스레이 사진 속 주인공이 자신일 거라 생각해서 진실을 감추기 위해 무단으로 결근했을 거라는 경진의 주장과 어쩌면 실제로 직원들이 모두 각자의 이유 대로 아프거나 가정에 일이 생겨서 결근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윤영의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두 사람은 근거 없는 추측에 매달려 진실을 상상하기 보다는 직접 발로 뛰어 찾자고 하며 직원 중 한 명의 집을 찾아간다.

과연 무엇이 진실이었을까? “사실은 편집되고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영화 속 주장처럼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편집되고 만들어진 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메기>의 윤영은 그런 사회 구조 속에서도 끝까지 진실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진실을 찾아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나아간다. 어쩌면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사회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행동 일지도 모른다.

 

▲ 제48회 로테르담 영화제에 참석한 이옥섭 감독과 구교환 프로듀서(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제48회 로테르담 영화제에 참석한 이옥섭 감독과 구교환 프로듀서(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메기>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아트하우스상, KBS독립영화상, 시민평론가상,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뒤로 판타지아 영화제와 오사카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서 연이은 수상을 이뤄내며 한국 독립영화로서 작지 않은 성과를 얻어낸 화제작이다. 대작 위주의 관습적인 장르영화가 다수를 이루는 한국영화계에서 <메기>는 한국의 다양성을 독보적인 위치에서 확보한다. 사실주의와 표현주의를 오가는 영화적 형식을 넘어서서 한국 사회 속 청년들이 처한 잔인한 현실을 한편의 우화로 선보이는 <메기>는 단연코 한국 영화계가 주목해야 할 올해의 작품임에 틀림없다.


Posted by 사용자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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