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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칸 영화제 각본상을 포함 2관왕,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기생충>과 경쟁을 벌이기도 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제목처럼 화제성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영화를 통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신작인 이 작품. 꺼지지 않는 완성도와 담고 있는 메시지의 불씨는 과연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힘 없는 개인의 이야기가 지닌 정치적 힘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연출을 맡은 셀린 시아마 감독(사진 출처: 다음 영화)


나는 모든 영화가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정치적이지 않은 영화야 말로 최악이다. 

그리고 가장 최악의 정치적 영화다. 

([Interview Magazine], 2015. 2. 2)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연출한 셀린 시아마 감독은 프랑스 국립 영화 학교 ‘페미스’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했다. 졸업 후 5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4편의 장편 영화를 연출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 영화인이지만, 그 활동의 범위는 단순히 창작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녀는 프랑스 영화계 내의 성차별과 대표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조직된 ‘두 번째 시선(Le Deuxième Regard)’에 합류했고, 2016년 칸 영화제에서 시작된 ‘5050x2020’ 운동을 프랑스 내에 확장시키는 데 앞장서 왔다. 참고로, 5050x2020 운동은 2020년까지 여성 영화인의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유럽 각 국가별로 다양한 연대와 행사를 주도하는 캠페인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 레즈비언 감독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 곳곳에 전달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 중인 감독이기도 하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전작들. <워터 릴리즈>(2007), <톰보이>(2011), <걸후드>(2015)(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셀린 시아마 감독의 전작들. <워터 릴리즈>(2007), <톰보이>(2011), <걸후드>(2015)(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셀린 시아마 감독은 “다양한 목소리가 그들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최우선의 관심사”([씨네21], 2019. 6. 5)라고 자신의 영화적 방향성을 주장했다. 이는 그녀가 만든 모든 작품에서 나타난다.

2007년 만든 <워터 릴리즈>는 사춘기 소녀들의 성과 사랑을 과감하게 다루며 다수의 영화제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은 첫 장편 데뷔 작품이다. 이후 스스로를 남자로 인식하는 어린 퀴어 이야기 <톰보이>(2011)와 파리의 하층 계급으로 살아가는 한 흑인 소녀의 삶을 다룬 <걸후드>(2014)까지, 셀린 감독은 성 정체성과 인종, 계급을 넘나들며 프랑스 내부의 소수자들을 여과 없이 스크린으로 재현해 냈다. 작품을 통해 힘없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어떻게 정치적인 힘을 지닐 수 있는지를 보여 준 것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감독이 선보였던 이전의 관점을 폭넓게 확장시킨다. 역사에서 지워진 여성 화가의 러브 스토리를 통해 여성의 삶을 다시금 복원하고 그들의 사랑과 연대를 가시화 한다. 소녀들의 성장 서사를 넘어서 성인 여성들의 러브 스토리를 다루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정치적이다. 분명 존재했음에도 언급되지 않았던 여성 화가의 삶과 금지되었던 여성들의 사랑을 재현하는 것은 영화(역사) 속에서 숨겨져 왔기 때문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그런 의미에서 온전히 정치적 영화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

▲ 모델로 선 엘로이즈(아델 하에넬)의 자세를 교정하는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사랑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고 이것은 정치적 행위입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여성의 시선을 표현하며 

관객과 시선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입니다. 

([LeMagduCiné] 2019. 9. 7)


영화에서의 ‘시선’은 일반적으로 남성의 소유물로 인식되어 왔다. 남성의 시선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신체는 스크린 안에서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타자화 되어 왔음을 많은 여성 영화 학자들은 비판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이러한 과거 여성주의적 관점에서의 ‘영화적 응시’의 문제를 재고한다. 카메라의 시선이 남성의 소유물이었다고 주장하는 것부터 문제라는 것이다.

셀린 시아마 감독에 의하면, 카메라가 남성의 시선을 대변해 왔으나, 관객이 여성일 경우엔 그 시선이 여성의 것이기도 했다. 남성적 시선을 여성이 바라봤을 때 그 시선을 무조건 남성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여성적 시선은 남성적 시선보다 더 복잡한 과정을 통해 구성돼 왔을 수도 있다.

셀린 감독은 남성적 시선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여성의 시선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남성의 시선을 재정의하고 그것이 보편적이란 인식을 전복하는 것이다.

그녀는 여성의 시선을 ‘평등한 관계 속에서 (감정을) 공유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바라보는 자와 그 대상이 되는 자 사이의 평등한 관계 속에서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 말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여성의 시선이 평등과 공유 사이에서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한 작품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서선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표현된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엘로이즈(아델 하에넬)는 결혼을 앞두고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미래의 남편에게 초상화를 보내지 않기 위해 모델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자신을 그리는 화가가 남성이란 점을 넘어 그 그림을 ‘소비’할 주체가 원치 않는 남성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녀를 반드시 그려야만 하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는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엘로이즈에게 접근해 그녀와 마음을 나눈다. 그 과정에서 마리안느는 두 개의 초상화를 그린다. 첫 번째는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기억에 의존해 엘로이즈를 관찰한 결과물. 두 번째는 엘로이즈에게 신분을 드러내고 그녀와 관계 맺음을 통해 그려낸 작품이었다.

두 작품의 차이는 감독의 주장처럼 두 여성의 평등한 관계와 삶의 공유가 응시의 결과물을 어떻게 다르게 만드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는 감독이 엘로이즈를 바라보는 마리안느의 시선을 통해, 또 모델로서 엘로이즈가 마리안느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 “과연 여성의 응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남성의 응시는 대상을 개체화 하는 폭력성을 내포한다면, 여성의 응시는 존재로서의 대상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여성/남성의 이분법을 넘어 영화 카메라가 윤리적으로 대상을 어떻게 담아내야 하는지를 사유하게 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지닌 또 다른 영화적 힘이기도 하다.


서로가 서로의 조력자가 되는 연대의 기록

▲ 바닷가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가 이야기하는 유토피아는 우리가 품었던 꿈과 다릅니다. 

우리는 유토피아를 삶으로 경험합니다. 

그래서 유토피아가 시스템, 

 또는 다른 이들을 위한 가능성들로 실현되기를 소망합니다. 

([JEZEBEL], 2019. 12. 04)


마리안느가 집에 처음 도착했을 때, 문을 열어 준 이는 엘로이즈가 아닌 하녀 소피였다. 소피는 마리안느에게 엘로이즈에 관한 정보를 전달한다. 그리고 우려한다. “해낼 수 있겠어요?” 소피는 처음부터 두 사람의 관계 주변부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오히려 둘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돕는 조력자였다.

그랬던 소피가 서사의 주체로 등장하는 순간이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해 그 아이를 유산시키기 위한 시술을 받는 대목이다. 소피의 상황을 알게 된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적극적으로 그녀를 돕는다. 이 순간 주인공과 조력자의 위치가 뒤바뀐다. 시술을 받고 온 뒤 아파하는 소피를 바라보며,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 이 순간을 기록할 것을 요구한다.

한 순간의 경험은 찰나의 순간 속에서 해체되고 지워진다. 경험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 기록은 필수. 과거의 기록은 권력자, 남성, 그리고 사건 중심이었다. 그 사이에서 소수자들의 역사와 기록은 사라진 채 구전으로만, 또는 느낌과 감정으로만 남아 어렴풋이 이어져 왔다.

엘로이즈가 기록을 요구한 것은 정당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그리기 위해 그녀들을 응시했던 마리안느의 시선은 타당했다. 역사에서 주체로 등장하지 못했던 여성의 경험과 사건이 기록으로 역사화 되는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관계는 사랑을 넘어 여성의 연대로 확장된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셀린 시아마 감독은 그녀들의 관계와 연대를 일종의 유토피아로 상정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그녀들을 부정하고 떨어트리고 해체하더라도 서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서로를 잊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 셀린 감독은 바로 이러한 여성들의 연대가 만들어 내는 유토피아가 꿈이 아닌 실존적 삶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영화 속에서 재현된 그녀들의 관계는 실재적 사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모습을 재현해 관객에게 선보이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관객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

2019년, 국내외에서 제작된 많은 퀴어 영화들이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되었다. 퀴어는 더 이상 영화 속에서 숨겨야 할 대상이거나 금기시된 소재가 아니다. 그 욕망과 감정은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어 왔고, 여러 유의미한 성과들이 작품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2020년 첫 시작을 여는 아트버스터 작품으로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새로운 한 해가 우리에게 어떤 설렘으로 다가올지 기대하게 만든다. 영화 속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소피가 보여준 평등한 연대와 사랑이 현실의 삶에서도 가능해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Posted by 사용자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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