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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감독상 수상 소감으로 유명해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이다. 이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가장 개인적인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또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가 있다. 바로 독일 현존 최고의 미술가로 꼽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다. 2007년 <타인의 삶>으로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독일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신작 <작가 미상>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생애를 기반으로 픽션을 가미한 작품이다. 독일의 격동기 속에서 체계의 억압과 개인의 자유의지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성장한 한 예술가의 시간은 매혹 그 자체.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된 예술의 모습은 무엇일까?



인생이 그림이 된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

▲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생을 영화로 옮긴 <작가 미상>(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생을 영화로 옮긴 <작가 미상>(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나는 어떤 목표도, 어떤 체계도, 어떤 경향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강령도, 어떤 양식도, 어떤 방향도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1966년, 게르하르트 리히터가 노트에 남긴 말이다. 이는 한가지 목표를 향해 한 방향으로만 가려는 경직된 사회 속에서 끝없는 불확실성을 추구하며 세계의 균형을 맞추고, 굳어진 삶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예술의 역할을 강조한다. <작가 미상>에서 리히터를 연상시키는 주인공 쿠르트(톰 쉴링)의 예술학교 스승은 수업 중에 이렇게 말한다. “예술만이 나치 이후 잃어버린 자유의 감각을 되돌려줄 수 있다. 그러니 너희가 자유롭지 않다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끔찍한 전체주의의 기억이 남아있는 독일 사회를 회복할 수 있는 힘은 예술 안에 잠들어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1932년 독일 동부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나치 치하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는데, 삼촌과 아버지는 나치 당원이었고 이모는 히틀러의 우생학(優生學, eugenics) 정책에 희생된 피해자였다. 패전 후 그의 삶의 터전은 폐허가 되었다. 냉전기가 시작되었고, 스탈린주의라는 또 다른 전체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청소년기가 시작되었다.


▲ 영화 속 쿠르트가 대학 수업 시간에 그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림(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속 쿠르트가 대학 수업 시간에 그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림(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는 1951년부터 동독 드레스덴 예술대학에서 본격적인 예술 교육을 받으며 그림을 그렸지만, 그에게 허용된 것은 오직 사회주의 리얼리즘 뿐이었다. 자유 감각을 지향하는 작품들은 ‘퇴폐 미술’이라 불리며 반면교사로만으로 전시되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억압은 그의 행동을 구속했을 지라도 사유까지 제어하지 못했다.

한편, 그는 자신의 장인이 나치 군위관으로서 안락사 프로그램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두 달 전, 그는 아내와 함께 서독으로 탈출한다. 그리고 당시 서독에서 현대미술의 최전선이었던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에서 현대미술을 접한다. 참고로 같은 해, 이 학교의 조각과 교수로 임명된 이는 바로 영화 속 쿠르트의 스승 안토니우스 판 페르텐(올리버 마수치)의 모델이 된,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다.


<타인의 삶> 이후, 독일 격동기로의 회기

▲ 자신의 첫 장편 <타인의 삶>(2006)을 이후 다시 독일의 격동기로 돌아온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자신의 첫 장편 <타인의 삶>(2006)을 이후 다시 독일의 격동기로 돌아온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은 나치와 나치의 희생자가 함께 살면서 무너진 도시를 함께 재건해야하는 독일의 상황이, 리히터의 가족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았다. 역사의 비극과 아이러니가 개인의 삶 속에 들어와있는 것이다. 그는 리히터의 자전적인 요소들을 가져오더라도 전기 영화를 원치는 않았고, 그래서 실제 모델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이야기의 큰 틀은 수정하지 않고 관계를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과정에서 허구를 더해 이야기를 튼튼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쿠르트에게 이모는 유년기에 사라져버린 존재이지만, 이모의 말(“절대 눈 돌리지 마”)은 계속해서 그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 허구는 체계의 지속된 억압에도 불구하고 쿠르트가 자유의 감각을 기억하고 갈망하게 만드는 타인의 영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 극중 크루트의 유년 시절 예술적 영향을 끼친 이모 엘리자베스(사스키아 로젠달) (사진 출처: 다음 영화)▲ 극중 크루트의 유년 시절 예술적 영향을 끼친 이모 엘리자베스(사스키아 로젠달)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치열한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예술가가 자신이 겪은 경험들로부터 자신만의 질문을 만들고 진실한 대답을 찾는 과정, 즉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을 만드는 것’을 리히터의 작품과 연결해서 볼 수 있다. 사실 리히터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 재현된 그림 ‘마리안네 이모(Tante Marianne)’(1965)도 처음에는 ‘어머니와 아이’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사진의 진실성을 통한 ‘작가 미상’의 예술

▲ 극중 중요한 그림으로 재현된 '마리안네 이모'(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극중 중요한 그림으로 재현된 '마리안네 이모'(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현대미술사에서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누구인가? 그는 회화를 통해 사진을 그린 최초의 화가로 이야기된다. 1960년대 초반부터 흑백으로 제작된 그의 ‘포토 페인팅’은, 그가 찾은 사진이나 직접 찍은 사진을 캔버스에 프로젝터로 영사해서 이미지를 딴 후, 사진과 똑같이 보이도록 채워 넣은 것이다. 그는 여기에 그림을 부드러운 붓으로 뭉개거나 고무판으로 밀어서 흐릿하게 만드는 ‘블러(blur)’ 효과를 더했다. 이것이 바로 리히터의 ‘흐릿한, 그러나 정확한 그림’이다.

자기만의 예술을 고심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 이 형식은, 왜 그토록 선구적인 것으로 여겨졌을까? 미술사적 맥락에서, 사진과 회화는 오랫동안 서로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회화는 재현의 정확도에 있어서 결코 사진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 19세기에 사진이 등장하자 고전적인 회화는 뒤로 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미술은 자기만의 것을 찾기 위해 방향을 틀었고, 20세기에 이르면 현대미술은 야수파, 초현실주의, 추상,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등의 양식으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그리고 리히터가 작업을 시작할 무렵에는, 그간 영향을 미쳐온 매체의 순수성(각 매체에 고유한 특성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담론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리히터가 사진과 회화의 결합물을 만든 것이다.


▲ 쿠르트는 진실을 그리려 한다. 억압적인 구조 속에서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쿠르트는 진실을 그리려 한다. 억압적인 구조 속에서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에서 쿠르트는 끊임없이 ‘진실’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사진의 진실성’에 이끌린다. 인간의 눈은 자신이 아는 대로, 자기가 아는 것만 보는 습성이 있다. 이때, 우리가 아는 것은 이념과 같은 구조 안에서 주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억압적 체계 속에서 자유를 잊은 사람들의 눈에 자유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퇴폐’로 여겨져 기피될 뿐이다. 인간의 눈은 인간적 의식에 의해 한계를 갖지만, 기계적 눈인 카메라는 다르다. 그것은 프레임 안에 들어온 모든 것을, 그 어떤 것도 ‘피하지 않고’ 평등하게 보여준다. 말하자면, 사진에는 리히터가 거부하는 강령, 양식, 방향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눈에서 왜곡되어 그려지는 회화와 달리, 사진은 ‘진실’하다.

그렇다면 왜 사진을 베낀 그림을 흐리게 만들어 다시 회화처럼 보이게 했을까? 미술사적 맥락에서 그것은 사진과 회화 그 사이에 있는 특별한 상태를 만든 것으로 이야기된다. 또, 영화 내에서는 중요한 순간들에, 가까이 있는 손으로 초점을 옮겨 장면을 흐릿하게 만들던 자신의 반복된 행위와 맞물려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리히터는 그 어떤 것으로도 의미가 결정되지 않는 상태를 원했다. 만약 작품이 자신의 개인사와 연결되어 해석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다른 의미로 열리지 못하고 닫혀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작가 미상’이 되고자 한다.

이 영화는 어쩌면, 리히터의 의도와 다르게 의미를 닫아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토 페인팅 작품은 벌써 반세기가 되었으니 그래도 되지 않을까. 하나의 양식에 머무르는 것을 싫어하는 리히터는 이후 사실주의와 추상의 극단을 오가며 회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가장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미술 작가인 그는 아직도 진실을 찾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중이다.



<작가 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자신들의 난감한 습작을 공개하는 장면이다. 당시 미술 전반에 깔려 있는 트렌드와 이를 접목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없는 아이러니함을 던진다. 더불어 미술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요셉 보이스에 대한 묘사도 흥미로울 것이다.(그가 왜 항시 모자를 쓰고 있는지에 대한 진실이 나온다.)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가져온 물리적 시간의 압박감은 상당하지만,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 경직된 삶이 예술로서 회복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서 지켜 볼만한 가치가 있다.

Posted by 사용자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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