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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봉작인 셀린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 모두 꿈을 지닌 여성들이 예술가로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수려하게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평단과 관객 모두 호평으로 화답했다. 이 바통을 이어받듯이 지난 2007년 관객을 만났던 영화 <비커밍 제인>이 재개봉한다. 상상으로 옮긴 제인 오스틴의 삶을 그린 이 영화가 현 시점에서 개봉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18세기를 살아간 한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

▲ 사랑보다 펜을 선택한 제인 오스틴(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줄리언 재럴드 감독의 영화 <비커밍 제인>은 존 스펜스의 전기 <비커밍 제인 오스틴>을 바탕으로 제인 오스틴이 불러들여 예술가로서 자리 매김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상상으로 옮겼지만 이 작품이 단순 작가의 연애담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사랑보다 펜을 선택한 그녀의 삶을 통해 창작의 고통이나 고뇌, 지난한 연습과 좌절 혹은 성공과 명예 못지않게 필연적으로 당대의 사회와 불화하는 순간들이 보여준다.

여성의 경제적 활동이 제한되었던 시대, 결혼이 당연한 숙명이었던 사회는 여성에게 딸, 아내, 어머니의 역할을 순서대로 따라가기를 요구한다. 그에 반해 자아를 주장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현실 너머의 세상을 꿈꾸고 표현하려는 그녀들의 시도는 매번 사회 규범에 대한 도전과 위반으로 간주되었고, 자주 그녀들은 불결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로 인해 과거 여성 예술가들의 삶은 어김없이 투쟁의 역사 그 자체이며, 오히려 예술이 어떻게 그녀들의 투지를 지지하고, 삶을 지탱하여 마침내 그녀들을 구원하게 되었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비커밍 제인>도 이 결을 같이 한다. 


그토록 제인 오스틴 작품에서 작가를 찾는 이유는?

▲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서는 돈, 사랑, 결혼 등 당시 영국 중상류층 여성을 주로 다룬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1715-1817)의 소설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맨스필드 파크> <엠마> <설득> <노생거 사원>등의 대표작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돈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영국 중상류층 여성들이 주로 등장하고 이들의 우정과 사랑을 소재로 삼은 것. <오만과 편견>의 네 자매만 봐도, <엠마>의 중매쟁이 엠마만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영화와 TV 드라마로 여러 번 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롭게 느껴지는 건 독자와 관객뿐만 아니라 그녀의 작품세계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행동이다. 바로 작품에 등장하는 각각의 여성 주인공에게서 제인 오스틴의 실제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골몰한다는 사실.


▲ 대부분의 개인사가 베일에 쌓인 제인 오스틴의 삶.(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끝까지 독신을 고수한 여성 소설가라는 사실이 로맨스 장르와 맞물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든, 41세에 요절한 그녀의 인생이 호기심으로 이어지는 것이든, 하필 여성 감독,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경험과 사생활을 가늠하려는 시도가 빈번한 것은 어쩐지 마음 한구석 불편한 일이다. 

게다가 그녀의 상상력이 사회적 인식으로부터, 경제적 곤궁으로부터 그녀가 독립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 믿었던 제인 오스틴의 용기를 떠올리면, 작품에서 상상과 경험의 영역을 구분하려는 세간의 시도는 야속하다. 


제인 오스틴의 연애담이 다가 아니다!

▲ 극중 톰 리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와 춤을 추는 제인 오스틴(앤 해서웨이)(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원작 소설이 아니라 작가를 주인공으로 삼은 <비커밍 제인>이라면, 제인 오스틴의 실제 삶에 대해 호기심을 품었던 이들에게 충분한 답이 될 만한 영화다. 가족들 앞에서 글을 낭독하기를 좋아하던 그녀가 사랑과 좌절, 선택과 결단의 순간을 겪은 후, 마침내 소설 <오만과 편견>을 쓰면서 작가의 길에 접어드는, 제목 그대로 ‘제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찬찬히 따라간다. 

물론 <비커밍 제인>은 엄밀히 말하자면 제인 오스틴의 전기 영화가 아니라, 톰 리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와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그녀의 소설 속 세계를 재구성한 픽션에 해당한다. 실제 그녀의 삶에서는 동시에 두 남자를 놓고 선택을 고민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고, 훗날 톰 리프로이와의 재회도 없었다. 


▲ <비커밍 제인> 포스터


하지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가족의 기대와 현실적 한계에 부딪쳐 고민하고 갈등하는 제인의 모습에는 분명 실제로 그녀의 인생을 통해서 맞닥뜨려야 했던 역사적 진실이 포함되어 있다. <비커밍 제인>에서 자주 소설 <오만과 편견>이 겹쳐지는 것은, 캐릭터와 에피소드의 유사성뿐 아니라 그녀 특유의 유려한 문장들이 내내 대사로 인용되는 탓이다. 


결혼의 조건에서 사랑과 돈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 나의 행복을 위해서 누군가의 희생이 필수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 너머를 꿈꾸되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0년이 지난 현재까지 제인 오스틴의 질문은 유효하다. <비커밍 제인>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소설의 내용을 기반으로 제인 오스틴의 세계와 삶을 가늠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며, 혹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름이 아직 낯선 이들에게도 18세기 배경의 로맨스에 그치지 않고, 당시 여성의 삶과 선택에 대해서 여성의 눈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진귀한 기회가 될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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