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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급진주의에 빠진 열세 살 소년 아메드. 그는 자신의 선생님을 유대인 애인을 두었다는 이유로 처단하려 한다. 벨기에의 거장 다르덴 형제는 열한 번 째 장편 극영화 <소년 아메드>에서 맹목적인 신념을 지닌 한 소년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합이 잘 맞는 이 형제 감독은 네 개의 눈으로 소년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인내심 있게 비추면서 손쉽게 내면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제72회 칸영화제에서의 감독상 수상은 이 영화의 윤리적 태도에 보내는 박수일 것이다.



다르덴 형제의 리얼리즘

▲ <로제타>는 다르덴 형제의 첫 황금종려상 수상작일 뿐 아니라, 당시 영화가 처음이었던 로제타 역의 에밀리 드켄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로제타>는 다르덴 형제의 첫 황금종려상 수상작일 뿐 아니라, 당시 영화가 처음이었던 로제타 역의 에밀리 드켄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벨기에의 형제 감독 장-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은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 듀오다. 그들은 아버지의 악행에 죄책감을 안고 어느 불법이민자와의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약속>(1996)으로 이름을 알린다. 실직 후 도시 외곽 트레일러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로제타를 주인공으로 한 <로제타>(1999), 자신의 아이를 암시장에 팔아버린 10대 부모를 보여주는 <더 차일드>(2005)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죽인 소년에게 접근하는 아버지의 이야기 <아들>(2002)은 남우주연상을, 시민권을 얻으려고 위장결혼을 한 로나의 이야기 <로나의 침묵>(2008)은 각본상을, 잃어버린 자전거와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되찾으려 하는 소년의 이야기 <자전거 탄 소년>(2011)은 심사위원대상을 받는다. 과연 다르덴의 영화가 칸에 도착했다 하면 누구든 기대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르덴 형제가 영화에 담는 인물 혹은 대상은 제목에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웃이나 난처한 선택지 앞에 놓인 평범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그들의 영화에는 복잡한 서사와 스펙터클한 이미지 그리고 강렬한 음악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의 마음을 졸이게 만든다. 무엇이 그런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그것은 제목과 달리 영화가 보여주는 인물이 불투명하다는 것, 우리가 결코 그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컷을 일부러 나누지 않는 ‘롱테이크’로, 그리고 카메라를 손에 든 채 촬영하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인물을 따라간다. 인물에 밀착해서 찍기 때문에 인물 주변의 공간을 파악하기 어렵고, 음악이 없으므로 의도된 감정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다큐멘터리가 연상되지 않는가? 이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이 바로 영화를 보는 시간 동안 우리가 상상의 영역으로 대피하지 못한 채로 불투명한 타인을 눈앞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네 개의 눈을 가진 한 사람?

▲ 칸이 사랑한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왼쪽), 뤽 다르덴(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칸이 사랑한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왼쪽), 뤽 다르덴(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다르덴 형제는 극영화를 만들기 전에 다큐멘터리를 먼저 시작했다. 형인 장 피에르(1951년생)와 동생인 뤽(1954년생)은 1970년대 초에 극작가인 아르망 가티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뒤, 고향인 벨기에의 세렝으로 돌아온다. 이곳에서 공장과 발전소에서 일하며 모은 돈으로 비디오 장비를 마련하여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해, 75년에는 데리브(derives, 일탈, 변화라는 뜻)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사를 차린다. 그리고 주택단지와 공장, 파업현장 등을 다니며 60여 편이 넘는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두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한 계기는 거창하지 않다. 사람들은 자기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니까 주말의 카페나 차고에서 그들에게 타인의 초상을 보여주면 어떤 결속력이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였다고. 다르덴은 1986년 <잘못된(falsch)>이라는 첫 번째 극영화를 만든 뒤, 1994년에는 플뢰브(Fleuve, 흐름이라는 뜻)라는 극영화 제작사를 설립한다.

다르덴 작품들의 배경이 되는 세렝은 벨기에 동부 리에주의 외곽에 있는 도시다. 한때 철강 산업도시로서 성업했지만 경제 위기 후에 일자리를 잃은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곳이다. 형제는 이 도시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고, 대부분의 캐릭터는 이곳을 기반으로 탄생했다고 말해왔다. 이 도시의 거리와 일터와 집 같은 장소들에서, 촬영에 들어가기 전 수없이 많은 리허설이 이어진다. 다르덴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육체적인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 <아들>의 주인공인 올리비에 구르메(맨 오른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다르덴 형제(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아들>의 주인공인 올리비에 구르메(맨 오른쪽)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다르덴 형제(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촬영에 들어가면 그들은 ‘네 개의 눈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영화를 만든다. 이것은 그들 자신이 직접 말한 표현이며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촬영장에서 한 사람이 모니터 속의 영상을 보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배우의 연기를 직접 본다. 그러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자리를 뒤바꿔 그걸 다시 본다. 오랜 공동작업을 통해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이러한 자리바꿈을 거치며 두 사람은 자신의 작업을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다. 네 개의 눈이 가진 힘은 여기서 나온다.


종교에 지배된 개인이 타인의 영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 영화 <소년 아메드>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소년 아메드>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우리에게는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흥분되었던 작년 칸 영화제에서 <언노운 걸> 이후 3년 만에 신작 <소년 아메드>와 칸을 찾은 다르덴 형제는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최근 몇 년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발생한 자살테러에 대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광기에 빠진 신앙과 테러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 감독들은 테러리스트의 고정관념에 맞지 않는 선한 인상의 비전문배우 소년 이디르 벤 다이를 무슬림 소년 아메드로 캐스팅했다.

<내일을 위한 시간> <언노운 걸>같은 최근작에 마리옹 코티아르와 아델 에넬이 출연한 경우를 제외하면, 알려지지 않은 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은 다르덴 영화의 특징이다. 이로 인해 관객은 전문배우가 아닌 이 소년의 얼굴에서 어떤 사전적 정보나 이미지, 편견을 갖지 않은 채로, 소년의 선한 인상으로 인해 테러리스트에 대한 공포를 잊은 채로 영화를 시작하게 된다.


▲ 문턱이라는 경계 앞에서 아메드와 이네스(메리엄 아카디우) 사이의 갈등이 드러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문턱이라는 경계 앞에서 아메드와 이네스(메리엄 아카디우) 사이의 갈등이 드러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가 시작하면 어느 교실에서 다급하게 빠져나가려 하는 아메드의 모습이 보인다. 카메라가 미처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소년의 움직임이 무언가에 사로잡힌 열광적인 상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교실의 문으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그를 불러 세운 이네스 선생님과 아메드 사이에 있는 갈등과 긴장이 드러난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게임에 빠져 있던 평범한 열 세 살 소년 아메드는 한달 전 갑자기 급진주의적 이슬람교에 깊이 빠진다. 그리고 종교 지도자의 가르침에 세뇌되어 자신을 어릴 적부터 가르친 이네스 선생님을 유대인 애인을 둔 배교자라는 이유로 처단하려 한다. 여기서 다르덴 형제는 아메드가 어떻게 종교에 그토록 열광하게 되었는지를 심리적으로 분석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분석이 아니라 가능성과 믿음에 있다. ‘종교에 강력하게 지배되는 개인이 타인과 만남으로써 변화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다르덴 형제가 던지는 화두는 이것이다.


▲ 다르덴 형제는 강렬한 신념에 사로잡히기 더욱 쉽다는 점에 주목하여 십대 소년을 주인공을 설정했다고 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다르덴 형제는 강렬한 신념에 사로잡히기 더욱 쉽다는 점에 주목하여 십대 소년을 주인공을 설정했다고 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다르덴은 멀리서 보면 공포의 대상인 종교적 극단주의자에게 카메라를 가까이 가져가 곤경에 빠진 한 개인을 비춘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있는, 유럽에 거주하는 이슬람 소년. 부재하는 아버지 대신 종교 지도자와 순교한 사촌을 롤모델로 삼은 소년. 지금껏 딜레마에 빠져본 적 없는 그는 확신에 차 있고 그의 신념은 너무도 명료하다. 그 신념과 충돌할 무언가를 안겨줄 누군가가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이 점에서 다르덴의 전작 <자전거 탄 소년>(2011)에서 아버지의 존재에 집착하면서 엇나가던 열 한 살 소년 시릴(토마 도레)을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른다. 두 영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시릴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어른의 영향에 의해 변한다면, 아메드의 운명은 더욱 불투명해 보인다. 아메드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구원은 어떻게, 어느 순간에 오는가? 영화의 끝에 아메드의 얼굴은 선한 소년의 것일까, 아니면 광기에 찬 테러리스트의 것일까? 이 소년의 운명이 궁금해진다.

Posted by 사용자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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