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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일부터 23일까지 CGV아트하우스에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특별전이 열린다. <데칼로그> 10부작, <세 가지 색> 3부작,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등 그의 대표작을 망라한 것은 물론 <사진+첫사랑> <아직 살아있다>와 같은 초기 작품까지 접할 수 있는 희귀한 기회가 될 예정. 특히 국내 멀티플렉스 극장이 TV 시리즈인 <데칼로그> 10부작을 모두 상영하는 것은 최초다. 예술영화의 마지막 부흥기였던 1990년대의 최전선에서 신비로운 영화 언어로 생의 비밀을 파고들었던 작가 키에슬로프스키. 특별전 상영작 중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을 통해 감독의 연출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 줄 빛나는 단서들을 살펴봤다. 



도플갱어 혹은 운명의 쌍둥이 스토리

▲ 하나의 운명을 공유하는 폴란드와 프랑스의 두 베로니카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이 세상에 저는 혼자가 아닌 것 같아요.


악몽이라도 꾼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깬 베로니카(이렌느 야곱)가 풍경화 작업에 한창인 아버지에게 다가와 말한다. “그럼, 넌 당연히 혼자가 아니지.” 아버지의 말은 반쯤 맞고 또 반쯤 틀렸다. 베로니카가 불현듯 감지한 존재는 타인이 아니라 또 다른 자기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거칠게 간추리자면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은 도플갱어 스토리다. 다만 대개의 도플갱어 소재가 스릴러나 호러 등의 장르적 쓰임으로 기억되는 것과 달리,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는 쌍둥이 소재가 불러 일으키는 극적 장치에는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다. 

내용은 이렇다. 폴란드와 프랑스에 사는 두 젊은 여성은 신체적으로 동일한 외모에 나이와 이름이 같고(폴란드에 사는 여성은 베로니카, 프랑스에 사는 여성은 베로니끄로 불린다), 부친과의 관계, 선천적으로 약한 심장, 그리고 음악적 재능마저 비슷하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알지는 못하는 상태에서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연결감을 느끼고 있다. 영화가 먼저 소개하는 것은 폴란드의 베로니카다. 우연한 기회에 음악회의 소프라노로 발탁된 베로니카는 무대 위에서 재능이 정점에 도달한 바로 그 순간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 인형을 들여다보며 자신과 연결돼 있는 다른 한 명의 운명을 느끼는 베로니끄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이후 수백 마일 떨어진 프랑스의 베로니끄는 돌연 음악 레슨을 포기하고 심장 검진을 받는 등 삶의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베로니카의 죽음이 베로니끄로 하여금 죽음을 피해가도록 이끄는 것만 같다. 그러던 중 베로니끄는 음악 교사로 일하던 학교에서 인형술사의 공연을 보게 되고, 마리오네트 인형의 비애에 매료되어 곧바로 인형술사 알렉상드르(필립 볼터)와 사랑에 빠진다. 알렉상드르는 어느날 이런 이야길 들려준다. “한 아이가 어렸을 때 뜨거운 난로를 만져 손을 다쳤지. 며칠 후, 다른 한 명은 자신이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어.” 

키에슬로프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은 삶에서 종종 ‘직감’으로 통칭되는 무수한 느낌들을 유영하며 존재의 수수께끼를 파고든다. 운명과 신의 존재,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은 무척이나 환상적이고도 시적인 양식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불현듯 실존의 감각을 일깨운다. 


1990년대를 수놓은 시네아스트, 키에슬로프스키는 누구인가

▲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은 키에슬로프스키가 리얼리즘에서 극영화적 스타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된 작품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폴란드 감독인 키에슬로프스키가 1990년대를 여는 자신의 첫 작품으로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을 선보인 것은 일종의 선포에 가까웠다. 폴란드의 다큐멘터리 거장 안제이 바이다의 영향 아래 작품 세계를 시작한 그의 초창기 영화는 냉철한 응시와 리얼리즘적 태도에 주력했다.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은 내러티브, 카메라 워크, 조명, 음악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극영화적 스타일의 도약에 몰두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다. 키에슬로프스키가 고국을 떠나 해외 프로덕션과 자본을 경험하는(폴란드, 프랑스, 노르웨이 합작) 본격적인 계기였고, 그 때문인지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을 다음 관문으로 나아가기 위한 ‘습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얼마간 과잉을 두려워하지 않은 작품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후 발표한 <세 가지 색> 3부작과 비교하면 일부 장면은 편집이 튀거나 다소 어수선해 보일 정도다. 그러나 때때로 실전이 아닌 연습에서 숨겨둔 재능이 마음껏 발휘되곤 하는 것처럼,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은 오롯하게 재단되지 않은 어떤 빈 공간, 의도치 않은 틈새로 인해 비로소 온전히 와 닿는 영화다. 

 

▲ 폴란드 베로니카의 죽음과 프랑스 베로니끄의 삶은 유럽의 변화를 담아낸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에서 유독 돋보이는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의 불투명에 대해 미국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키에슬로프스키는 우리에게 어떠한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 호의를 베풀고 있다"라고 재치있게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영화 속에서 실질적으로 명확하게 발생한 사건을 말하기란 어렵다. 다만 이 영화는 (느낌이나 감정을) 환기시킨다(It evokes).”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은 발표 직후 많은 평자들에게 정치적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폴란드의 주인공이 죽고 프랑스의 주인공이 생을 연장해 살아가는 이야기가 다분히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와 자유, 그리고 화합으로의 이행에 대한 감독의 메세지처럼 보였던 이유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새로운 장(張)이자, 유럽의 변화를 시의적절하게 담아낸 한 편의 우화이고, 프랑스 배우 이렌느 야곱의 아름다움을 세계 무대에 전파한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은 그 다층적인 프리즘 덕분에 발표와 동시에 평자들의 찬사도 제 때 획득하는 영예를 누렸다. 1991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국제비평가협회상, 에큐메니컬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한 키에슬로프스키는 시각 예술인 영화가 보이는 것 너머까지 사유할 수 있음을 입증한 영화 예술의 선구자로 자리 잡았다.


넋을 빼놓는 미장센과 초월(超越)의 감각

▲ 환상적인 미장센과 영화에 꼭 맞는 사운드 트랙을 자랑하는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만큼 비옥한 팔레트로 시각적 황홀함을 안기는 영화는 드물 것이다. 촬영감독 슬라워미르 이드작은 세피아톤으로 바랜 화면 위에 빨강과 녹색, 황금빛을 뒤섞으며 전에 본 적 없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색채로부터 노스탤지어를 호출하고, 시각적 아름다움에 탁월한 감각을 보였던 키에슬로프스키의 재능은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을 거쳐 <세 가지 색> 3부작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감수성을 지닌 두 여성 인물의 이야기인만큼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은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들 중에서 음악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으로도 기록된다. 음악가 즈비그뉴 프라이즈너가 창조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중 일부가 극 중에서 18세기 작곡가 반 덴 부덴마이어의 음악으로 소개되어 많은 이들이 반 덴 부덴마이어를 실존 인물로 착각한 일화도 있다. 성스러운 합창곡, 웅장한 오페라의 한 대목을 연상케하는 소프라노 솔로곡, 환상동화를 떠올리게 하는 신비로운 테마 등 프라이즈너의 음악은 키에슬로프스키 영화가 마침내 영적인 순간에 가닿는 대목을 기막히게 포착했다. 


▲ 키에슬로프스키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시각, 청각 등의 감각으로 풀어냈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요약하자면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은 인간이 온전히 해독할 수 없는 실존의 느낌을, 그 총체를 고요히 쓰다듬는 영화다. 쏟아지는 폭우를 온 몸으로 맞이하며 노래하는 베로니카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오프닝 신부터 이를 명징히 드러낸다. 쇼트의 경제적 관점에서는 다분히 잉여로 분류될 순간들에 오히려 가장 강렬한 매혹을 드러내는 태도가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의 장면과 장면을 바느질하고 있다. 

이처럼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신체와 풍경이 안기는 감각의 극대화를 통해 키에슬로프스키가 나아가려는 세계는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존재의 신비, 운명과 신, 타자와의 필연적 공존 등을 주제로 삼는 웅장한 내면의 영화들은 오늘날 더욱 만나기 힘든 작품들이기에 귀하게 다가온다. 

생전에 키에슬로프스키는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의 주제로 ‘삶을 더욱 신중하게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힌 적 있다. 알든 모르든 우리는 매순간 다른 존재로부터(그게 누구이든) 영향을 받고 또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은 우리에게 더 섬세한 자기 인식과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반에 공개된 것 외에 무려 15개의 또 다른 편집본이 존재했다고 알려지는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 그 고민과 혼란의 갯수만큼 이 영화는 보는 이들에게 몇 번이고 녹슬지 않는 감탄과 신비를 안긴다. 감히 말하자면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을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경험은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 누릴 수 있는 거의 최대치의 기쁨 중 하나일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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