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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티스, 유치(乳齒)는 어린 시절 잠시 우리와 함께 하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우리 곁을 떠난다. 유치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통증을 느끼고 피 흘림을 마주한다. 이는 모든 인간 존재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유치와의 피할 수 없는 만남과 이별, 영화 ‘베이비티스’는 암에 갈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한 소녀를 통해 그 만남과 이별을 대면케 한다. 영화를 통해서 상실감을 마주해야 하는 이들의 아픔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는 일은 곧 우리의 상실감을 마주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새넌 머피, 호주의 샛별 같은 신예 감독의 등장

▲ 영화 ‘베이비티스’ 포스터(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베이비티스’ 포스터(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새넌 머피 감독의 ‘베이비티스’가 2019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선보이자 많은 평론가들은 세기의 데뷔작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남우주연상에 해당하는 마르셀로 마스트로얀니 상을 수상하고 황금사자상 후보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감독은 영국 드라마 ‘킬링 이브’ 시즌 3의 연출을 맡으며 선이 굵은 연출력으로 뚜렷한 횡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배우로 먼저 이름을 알렸지만 사실은 감독으로서의 수업을 먼저 받았다. 홍콩에서 자란 뒤 호주국립영화학교에서 연출을 공부했고 졸업 작품인 단편 ‘카리스마’(2014)는 칸국제영화제에 출품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베이비티스’는 호주의 극작가 리타 캘네제이스의 동명 희곡을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화 해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결국 장면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야생마 같은 배우들의 연기를 이끌어낸 공은 온전히 새넌 머피의 몫이었다. ‘감각적인 영상’이라는 단어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하게 폭발하는 영화 속 ‘무드’는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밀라(엘리자 스캔런)의 비극적 감정과 연결되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타임지의 영화평론가 케빈 마셔가 평가했듯 ‘감정적으로 조각나버린’ 인물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효과적으로 담아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토비 월리스,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조각난 영혼

▲ 밀라의 집에 초대받은 모지스(토비 월리스)가 평온한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밀라의 집에 초대받은 모지스(토비 월리스)가 평온한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베이비티스’가 이뤄낸 쾌거라면 극중 모지스 역을 맡은 ‘토비 월리스’를 세상에 알렸다는 점일 테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주한 뒤 호주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배우였다. 주로 TV 시리즈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갔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사이어티’를 통해 주목 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연기력을 극한으로 펼쳐낸 작품은 아직까지 ‘베이비티스’가 유일하다. 극중 ‘모지스’ 역할은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약물중독에 빠진 채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던 인물이다. 달리는 기차로 거침없이 달려드는 충동적 행동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친 행동에도 여린 눈빛으로 상대의 동정심을 이끌어내는 모순된 매력을 잘 표현해냈다.

돌아보면 그는 이미 ‘소사이어티’에서도 극의 긴장감을 더하며 인물들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조커 같은 역할을 맡았었다. 폭력적이지만 이면에 또 다른 서사를 감추고 있는 미스터리 한 매력의 소유자. 약에 취한 채 불안하게 떨리는 눈빛으로 도움을 호소하는 모지스의 눈빛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 동안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밀라와 은밀한 눈빛을 주고받는 카메라의 시선

▲ 엄마의 강요에 마지못해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밀라(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엄마의 강요에 마지못해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카메라를 바라보는 밀라(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언어가 지켜왔던 규칙들 중에서 유독 쉽게 배반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카메라가 ‘제4의 벽’을 넘어서선 안 된다는 불문율일 것이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드니 디드로가 처음으로 언급해 개념화된 ‘제4의 벽’은 배우들과 관객의 시공간을 완전히 분리한 채 관객을 철저한 관찰자의 위치에 서게 만든다.

관조의 대상이 된 배우들은 바라봄의 대상으로서 대상화 되어버리고 관찰자인 관객의 시선에 갇혀 버린다. 시선이 일방향적으로 흐를 때 이는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영화는 그 폭력을 용인하고 역으로 활용하는 서사 매체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바라보는 것은 절대 죄가 아니며 심지어 면죄부를 얻기도 한다.


▲ 파티에서 모지스에게 버림 받은 채 홀로 춤을 추던 밀라의 시선(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파티에서 모지스에게 버림 받은 채 홀로 춤을 추던 밀라의 시선(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새넌 머피 감독은 이러한 카메라의 일방적인 시선을 의도적으로 전복시킨다. 밀라는 시시때때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관객들에게 고백한다. 밀라의 시선이 카메라 렌즈를 뚫고 스크린 너머로 밀려오는 순간 관객은 밀라의 비밀을 공유한 공범자가 되고 그녀의 충동적인 행동과 선택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감독은 밀라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냥 단지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느끼길 원한다. 의도적으로 제4의 벽을 해체하는 것 또한 죽음을 앞둔 밀라의 불안과 열정, 절망과 슬픔을 관객들에게 오롯이 느끼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성장영화와 가족 드라마의 경계를 연결하는 비극적 서사

▲ 밀라에 의해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모지스와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밀라의 부모(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밀라에 의해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모지스와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밀라의 부모(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일반적으로 10대의 성장 과정을 다루는 영화들은 경쾌하고 거침없으며 희망찬 미래까진 아니더라도 결국 삶은 지속된다는 여운으로 종결되곤 한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는 실제 배우의 성장과정을 캐릭터에 녹여 내어 인생의 지속성을 영화적 시간으로 포착해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연기력을 극한으로 펼쳐낸 작품은 아직까지 ‘베이비티스’가 유일하다. 극중 ‘모지스’ 역할은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약물중독에 빠진 채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던 인물이다. 달리는 기차로 거침없이 달려드는 충동적 행동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친 행동에도 여린 눈빛으로 상대의 동정심을 이끌어내는 모순된 매력을 잘 표현해냈다.

‘보이후드’에서는 그 어떤 비극도 절대적이지 않다. 어차피 시간은 우리를 다른 삶의 형태의 삶으로 인도하게 될 테니까. 한편 ‘빌리 엘리어트’, ‘레이디 버드’, ‘벌새’는 벗어날 수 없는 시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도약을 시도하는 10대들의 몸부림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의 도전과 좌절은 절대 이해 받지 못한 채 부유한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욕망을 감추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세상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그런 세상을 이해시키기라도 하겠다는 듯 거침없이 뿜어내는 욕망은 결국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며 미래의 변화를 점치게 만든다.


▲ 모지스와 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밀라(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모지스와 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밀라(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반면 ‘베이비티스’는 분명한 성장영화임에도 희망을 전제하거나 밝은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다. 밀라가 드러내는 모지스를 향한 열정은 마치 나방이 불길을 향해 뛰어들 듯 강렬하게 타오르고 희소되어 버린다. 오히려 밀라의 열정에 변화되는 인물들은 그녀의 주변인들이다. 통증과 감각을 마비시키는 약물에 취해있던 가족들은 결국 밀라를 통해 고통을 대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를 가능케 하는 밀라의 충동은 절대적으로 절망적이고 비극적이다. 절망과 비극은 영화 속 인물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적 조건이기도 하다. 감독은 인물들이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주목한다. 카메라는 밀라와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주변 인물들을 소홀히 대하지 않으며 사려 깊게 모두의 감정을 포착해내고 이로서 관객들이 이들 모두의 고통과 연결될 수 있도록 감정의 선들을 직조한다.



고통을 바라보고 경험하며 대면하는 일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통은 외면 할 수도, 될 수도 없는 필연적인 감정이다. 새넌 머피 감독은 그 길을 절대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지 않는다. 마치 축제처럼, 파티의 한 순간처럼 함께 즐기며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베이비티스’가 고통스러우면서도 활기차고 아프지만 충분히 행복한 감정으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Posted by 사용자 SMC 에디토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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