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CJ




한 여인이 있습니다.


런던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모국인 버마(미얀마)로 돌아가 15년 동안 감금,

소중한 두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며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세상과의 연결은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그녀는 

세계최초로 유혈사태 없는 민주주의 운동을 하며 

노벨 평화상과 네루 평화상을 수상,

존재만으로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버마 국민에게 희망을 준

'철의 난초' 아웅산 수치 여사입니다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가 아웅산 수치 여사를 만났습니다. 버마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온 그녀의 삶은 뤽베송 감독, 양자경 주연의 영화로 재현되기도 했는데요, 아웅산 수치 여사의 방한을 기념해 짧게나마 그녀의 인생을 돌아보겠습니다. 

 





자택 감금 15년

가족과 헤어짐

영웅의 딸

노벨 평화상


그녀의 삶은 1988년 이후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아웅산 장군은 버마의 영웅으로, 1886년부터 영국의 식민지가 된 버마의 독립 영웅입니다. 영국 세력을 버마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한 아웅산 장군은 버마의 식민지 시대를 종식시킨, 국부와도 같은 인물입니다. 


아웅산 수치는 아웅산 장군과 킨치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입니다. 아웅산 장군은 버마의 독립이 이루어진 지 2년 만에, 정부가 채 구성되기도 전에 암살당합니다. 이후 아웅산 수치는 어머니를 따라 외국에서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1988년, 그녀가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돌아오기 전까지, 그녀의 외국 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와 경제, 철학을 공부하고, 두 아들, 그리고 남편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1988년, 버마에 있던 그녀의 어머니 킨 치 여사가 쓰러지자 아웅산 수치는 버마로 돌아갑니다. 


그 해 8월 8일, 버마에서는 888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버마의 국민들은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치에게 의지했습니다.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그녀는 버마 민주화 항쟁에 참여하며, 현재까지도 버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그녀를 두려워한 군부에 의해 15년간 자택에 감금당하고, 이 때문에 노벨 평화상 수상식에는 가족이 대리 참석하고, 남편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는 그녀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는 양자경 주연, 뤽 베송 감독의 영화 ‘The Lady’에도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The Lady’는 그녀를 존경하는 버마 국민들이 아웅산 수치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배우 양자경은 수치 여사를 만나는 순간이 감동적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녀는 너무나 여유롭고 평화로웠어요. 그녀의 우아함과 그 속에 깃든 강인한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죠”




버마 민주화 운동의 중심, 세계 최초로 비폭력 민주화를 이룩하고 있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한국 방송프로그램 중에서는 유일하게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를 찾았습니다. 그녀를 맞이하는 백지연 앵커의 오프닝이 인상적입니다.



“그녀가 그녀의 나라를 위해서, 민주화를 위해서 한 투쟁은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희생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희생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당연한 것이라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특별한 것이죠. 

그녀가 지내온 인고의 시간, 절대 짧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당연한 것이었다"고. 

그녀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그녀는 역사의 일부가 됐습니다. 그녀와 동시대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를 만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그녀를 인터뷰할 수 있다면 정말 큰 영광이겠죠?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그 영광을 갖게 됐습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녀. 그녀를 이제 여러분과 함께 만나보도록 하죠.


아웅산 수치. 이름만으로도 모두 알 수 있는 ‘그녀’입니다. 

오늘은 이 말에 더 힘이 주어지네요. 

사람으로 만나는 세상,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입니다.”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 가택연금.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 : 그녀에게 보낸 인류의 찬사





피플인사이드에서는 그녀를 위해 전각 도장을 선물했습니다. 도장에 박힌 꽃은 애초에는 그녀를 상징하는 ‘난초’를 형상화한 것이었지만 수치 여사는 이 꽃이 버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젊은이를 상징하는 ‘겅고’ 꽃과 똑 닮아있다며 이 꽃을 ‘겅고’로 생각하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에피소드에서도 자기 자신보다는 자신과 함께한 동지들, 그리고 버마 국민들을 높이는 그녀의 숭고함이 느껴졌습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피플인사이드를 찾아 주옥같은 인사이트(insight)를 남겼습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한 나라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그녀, 평화의 또 다른 이름이 된 그녀의 행보가 더욱 기대됩니다. 

 

 



“노력이 없는 희망과 기대는 텅 빈 꿈일 뿐이다."


피플인사이드 307회 아웅산 수치




Posted by CJ JOY

댓글 1

  • 더러운 과거사

    아웅산 수찌여사는 1945년생으로 아웅산 장군과 인도대사인 어머니 킨 치여사사이에 2남2녀(그중 오빠한명은 여덟살때 사망 밑에 여동생 역시 갓난아기때 사망)중 셋째로 태어났으며 그녀가 태어났을당시 아버지 아웅산장군은 만30세 어머니 킨 치여사는 만33세로 두분은 1942년도에 결혼했는데 두분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만혼으로 각각 만27세 만30세에 결혼하셨다고! 수찌여사가 만2세때 아버지 아웅산장군이 암살당하고 밑에있는 여동생도 낳자마자 죽자 어머니 킨치여사는 남은 두아이를 데리고 양육을 했을정도로 어렵게 살았다고하니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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